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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Oct 10. 2015

가뭄과 은행잎 사이, 무와 바다 사이

홍천 은행나무숲에 가다

어제의 일도 일주일 전 일인 듯 아련해지는 계절이다.

그저 부는 바람도 무슨 사연이 있어 보이고, 무심히 떨어지는 낙엽에 누군가의 이름을 붙여 불러보고  싶어 지는 그런 울렁임. 배낭 하나 둘러메고 길 떠나고  싶어 지는 그런 햇살.


지난 화요일, 사과를 하나 깎아 지퍼백에 넣고 커피 한 잔을 내려 텀블러에 담아 들고 시동을 켰다. 목적지는 한창 가을 가을 한다는 은행나무숲. 안내양의 안내를 따르면 2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한다는데, 평소 다니던 쭉쭉 뻗은 대로가 아니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야 하는 꼬불꼬불 진짜 강원도 길이다. 부대도 여러 개 지나고 훈련장도 지나는 코스, 가다 보면 군부대 훈련 중이니 진입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길 여기저기 붙어 있다. 브레이크와 액셀을 번갈아 밟아가며 한참을 돌고 돌아야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가 쉬이 사라지고 그렇게 또 한참을 가야 다음 마을이 나타난다. 분명 나도 홍천에 살고 있고 목적지도 홍천 은행나무숲인데 서울 가는 것보다 먼 길. 산을 돌아 돌아 달려도 반대편 차선에서 차 한두 대 오가는 것을 보기 힘든 적적한 길을 지나자니 여기가 한국인가 싶기도 하고 여기가 현실인가 싶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나 읽은 구운몽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 꿈꾸는 듯한 느낌으로 2시간을 달렸다.


빨갛고 노랗고 갈색이며, 검기도 하고 초록빛이 도는 나무 이파리들이 미산계곡의 눈부시게 쨍하게 하얀 바위들 사이로 자기 색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운전을 하고 있으니 앞은 봐야겠고 계곡과 산이 너무 멋져서 구경도 해야겠고, 차를 세워놓고 보자니 하고 싶은 구경 다 하다가 2시간 걸린다는 은행나무숲을 서너 시간 걸려 가게 될 것 같아 차마 내리지도 못하겠고, 그냥 지나치자니 내가 또 여길 언제 오겠나 싶은 갈팡질팡하는 마음. 그렇게 운전과 구경 사이에서 고민과 갈등을 거듭하면서 진짜 멋진 구경은 다 놓치고 마지막에 잠깐 내려 찍은 사진 한 장.

 

아, 이게 아닌데


아무리 찍어도 내 눈으로 보는 것 만큼의 색감과 감동은 찍히지 않았다. 여행의 풍경들은 역시  마음속에 담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내 마음에만 담을 수 있는 그 장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남는 것은 사진이라며 어딜 가든 셔터를 눌러댔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가슴 떨려하며 컴퓨터로 옮겨 놓은 사진들은 지금 어느 폴더에서 잠자고 있을까.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는 말은 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바로 그때 마음에도 함께 담아놓지 못한다면, 그래서 화면에 보이는 사진 한 장이 그 순간의 감정과 햇살과 바람을 함께 떠올리지 못한다면 수많은 사진이 있다한들 다 무슨 소용이랴.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내가 찍은  것보다 훨씬 멋진 사진이 즐비한데 말이다. 그래서 그저 여기저기 셔터만 눌러대던 습관을 버리고 나는 마음에 담기를 더 오래하고  그중에 한 장면씩만 사진으로 남겨 놓곤 한다. 그 햇살과 공기의 온도와 감정을 찾아낼 수 있게 할 책갈피로.


 


2시간이 꼬박 걸려 도착한 은행나무숲의 진입로에는 이미 많은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따로 주차장이 있는 관광지가 아니라 개인 소유의 숲을 10월 한 달 간만 개방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쪽 옆으로 나도 줄을 맞춰 차를 세워 놓고 가방을 둘러메고 입구를 찾아갔다. 숲 출입구에 늘어선 노점이 지방 도시 축제에 가면 있는 꼭 그런 모양이다.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2시간의 운전에 허기가 진 배를 달래려 잔치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배가 따뜻해지니 초보운전에 긴장한 마음까지 누그러들고 하루 종일이라도 저 숲에서 뒹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잔치국수 4천원. 삼삼하고 뜨끈하니 맛좋다.


계산을 하며 주인장에게 여쭤보니 홍천시내보다 양양이 더 가깝다고 한다. 나는 과연 오늘 동해바다도 보게 될 것인가, 혼자 떠나온 여정의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 무엇이든 언제든, 맘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 일단 은행나무숲에 들어가 커피 한 잔 하면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나는 숲으로 들어갔다.


분명 아직 떨어진 잎은 별로 없는데.

은행나무에 빼곡히 들어차 햇살에 반짝거리며 바람을 붙잡고 놀고 있을 줄 알았던 은행잎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것 또한 올해 극심한 가뭄의 여파이리라. 지나가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별로라며 한 마디씩 했지만 마음껏 잎을 키워내기에는 생존의 문제가 급할 때, 나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위축되고 그 생각마저 좁아지게 되는 것은 슬프지만 당연한 일이다. 그 현실을 뛰어넘는 꿈을 꾸고, 살을 베어내는 심정으로 그 꿈을 우직하게 이루어 갈 수 있다면 참 칭찬할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그러니까 현실적인 문제를 만나 그에 따라 목표를 수정하고 상황에 맞는 행복을 찾아나간다고 해서 그 모두를 패배자라고 욕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여전히 "불가능한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참고, 용감한 이들도 감히 다가가지 못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고치고 멀리서 순수하고 고아하게 사랑하고, 너무 지쳤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별까지 두 팔을 뻗어 보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특별한 일을 이루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사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주어진 것에 묵묵히 감사하고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땀 흘려 수고하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둘러앉은 밥상에서 인생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분명 한계가 있는 오늘의 삶 속에서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내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오히려 족하지 않은가. 철없던 시절에는 그랬다. 노벨상이라도 타야 의미 있는 인생이고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갖은 고생을 해야 사는 것처럼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여기의 평범한 삶을, 한계가 많고 부족한 것 투성이인 오늘의 일상을 찬찬히 살아갈 수 있어야만 그 이후의 어떤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소양강이 바닥을 드러내도록 말라버린 이 극심한 가뭄에도 이만큼이나 잎을 키워낸 은행나무를 보며 나는 한참 이런 생각을 했다.


장하다





혼자 길을 나서면서도 나는 커피, 사과 한 알과 함께 돗자리를 챙겼다. 은행나무숲에 오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숲에는 벤치가 여기저기 많아서 굳이 돗자리가 없더라도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은 있었지만 내가 돗자리를 깔고 두 다리를 쭉 뻗고 벌렁 누워서 보는 은행나무숲 하늘을 벤치에 앉아있는 점잖은 어른들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나 사진보다는 실제가 훨씬 멋졌다. 그러고보니 내가 사진을 너무 못 찍는 것일수도.



한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누워 아이들이 네 잎 클로버 찾으며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자상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네 잎 클로버가 왜 행운의 상징인지 나폴레옹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분명 들었던 이야기인데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새로웠다. 그냥 책으로 읽거나 이야기만 듣는 것과 직접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며 듣는 이야기는 이렇게 다른 것이구나. 한 아이는 연속으로 네 잎 클로버를 찾아내고는 신이 나 있었다. 그동안 잘 찾지 못해서 샘이 나기도 하고 살짝 짜증이 난 것 같기도 한 나머지 아이들이 여긴 없는 것 같다며 투정을 부렸다. 찾은 것도 많던데 좀 나누어 주면 좋으련만 네 잎 클로버를 손에 가득 쥐고 연신 "찾았다!"를 외쳐대는 아이가 지켜보는 나도 좀 야속하더라.

아이들이 네 잎 클로버를 찾는 동안 내 엄마뻘 돼 보이시는 아주머니 두 분이 사진을 한 참 찍다가 옆으로 지나가시며 "아유, 난 네 잎보단 세잎이 좋아. 세 잎 클로버의 뜻은 행복이잖아." 하셨다. 아, 그런 거구나. 우린 수많은 행복은 다 지나치고 드문 행운만 찾는 거구나.



자리를 잘 잡아서인지 온갖 지나가는 말소리가 다 들린다. 책에 집중은 잘 안되더라.


한참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책을 꺼내 들었다. 여기 와서 읽으려고 일부러 남겨둔 마지막 몇 장을 읽고 있는데 아까 세 잎 클로버 아주머니가 지나가시면서 "책을 그냥 술술 읽히겠다." 하셨다. 그런데 생각만큼 책이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책이 술술 읽히겠다는 말과 네 잎 클로버 찾으며 투닥거리는 아이들의 말과 벤치에 앉아 전화통화를 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이 다 뒤섞여 책과 함께 읽히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날도 있다. 책 보다 지나가는 남의 말이 더 맛있는 날이.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고 책을 덮었다. 마지막 한 장은 집에 가서 집중해서 읽어야겠다며.




한 시간이 좀 넘게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있으려니 엉덩이가 슬슬 시리기 시작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숲을 다시 한바퀴 돌아 나왔다. 입구에 늘어선 노점에서 아까 봐 두었던 내 다리보다 실한 무를 하나 사가지고(정말 실한 것이다) 다시 차에 올랐다. 이렇게 엄청난 무가 천 원이라니. 나는 엄청나게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숲까지 가는 2시간의 운전을 잘 했기 때문이 아니고, 숲에 앉아 마신 커피가 정말 끝내주게 맛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돗자리를 가져가는 준비성 때문에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이렇게 실한 무를 단돈 천 원에 살 수 있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집에 오는 내내 이 무로 무엇을 해 먹을까를 생각했다. 무조림을 할지, 소고기 뭇국을 끓일지, 오징어국을 끓일지, 무채 김치를 해 볼지. 머리 속에서 무가 수십 가지의 요리가 되는 사이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갈 때보다 20분은 더 빨리. 무 생각하다가 내가 과속이라도 한 걸까. 그렇게 무에 밀려 양양과 동해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들이로 시작해 장보기로 마무리된 여행. 초보인 주제에 꼬불길을 4시간 가까이 운전했기 때문인지 집에 오니 무를 요리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점이 함정. 어쨌든 가을 나들이 한번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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