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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Oct 30. 2015

새벽 3시경의 병실복도

통증에 힘입어 쓰는

9층 병실의 새벽 3시 27분은 코 고는 소리와 뒤척이는 소리, 그리고 수액 방울 떨어지는 소리로 가득하다.

모두가 세상의 많은 아쉬움과 하고 싶은 일들이 가득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같은 옷의 환자 혹은 같은 표정의 보호자가 되어 집에 갈 날만 기다린다. 나로서는 바로 오늘이다.


이틀전 난생처음으로 수술을 했다. 전신마취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지만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이전과는 다른 나라는 것을 곳곳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 애써 웃었지만 그렇게 즐겁지 않은 경험이다.


커튼을 치고 있어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6인 병실의 남이 사는 소리. 남편에게 전화하고 아들에게 전화하고, 동네방네 입원소식을 알리는 아주머니는 늘 혼자다. 누군가 내 옆에 와 병실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남몰래 자랑스러워지고, 어쩐지 쓸쓸한 기분을 그나마 나눠가질 수 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보호자에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보호자는 시도때도 없이 뭐 필요한게 없는지 물어온다. 먹는 것과 배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그 나머지는 모두 나머지가 되어버리는 환자로서의 생활. 세상에 중요한게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한다.


아직 통증이 남아 있는 생생한 상처를 안고 나는 오늘 집으로 간다. 이 상처의 생생함이 나를 두렵게 하지만 그대로 잘 두기만해도 다시 붙은 살이 되고 통증은 말끔히 사라질 것이라는 이 기적같은 사실을 붙잡고 시간에 의지하는 것이다. 시간은 정말 많은 것을 해결하고도 으스대지 않는 진정한 의사가 아닌가. 조물주의 지혜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아픔이 이토록 생생한 구멍뚫린 배를 붙들고 바뀌달린 수액기둥을 친구삼아 병실 복도를 한두바퀴 돌아 정수기 앞에 앉았다. 더는 갈곳이 없어 브런치의 창을 열었는데도 여전히 병실과 통증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병실 침대에 앉아 전국팔도를 상상하겠다고 빌려온 여행책은 꺼내보지도 못했고, 노작가의 마지막 수필, 그 담담한 문장들 속에 누워서 겨우 숨만 쉬는 물고기같은 나를 본다. 인간은 이다지도 약한데 너무 아는체도, 너무 잘난체도 하지 말아야겠다.


병원에서 겨우 사흘째인데, 큰 환자라도 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병실의 새벽. 통증의 생생함과 완치의 기대를 왔다갔다하며 집에 가면 마실 따뜻한 차 한잔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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