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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Dec 30. 2015

잘 가, 고마웠어.

2015년을 하루 일찍 보내며

때마침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눈 내리는 날의 고요가 온 동네에, 온 산에, 온 지붕에 쌓이고 있다.

개도 짖지 않는 눈 내리는 밤, 나는 주방 식탁에 앉아 새로 산 노트북을 꺼내놓고 2015년을 생각한다.


이렇게 내년을 기다린 적이 있었나 싶다. 2016년을 간절히 기다리며 자판을 두드린다.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가슴 떨리는 여행이 계획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기다린다.

2015년은 참 힘들었다. 그래서인가 보다. 병신년을 이렇게 기다리는 것은.


그래, 올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가 생각해보자.

가족 같은 내 친구가 젊디 젊은 나이에 암 수술을 했다. 마음이 물같이 무너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지금도 나보다 더 열심히 사시는 우리 아버지는 믿기지 않게도 환갑이 되셨고 

결혼 3년 차, 미처 가까워질 사이도 없이 시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남편의 대학원 합격의 기쁨과 함께 평일 독수공방이 시작되었고

언제나 과신하던 내 건강, 뒤통수를 제대로 맞아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동네 어르신께서 약을 드셨다. 이름도 무서운 그라목손. 그리고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끝나기 무섭게, 어제 우리 마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할아버지께서 위암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떠올렸을 단어가 생각난다.

죽음.

매년 가까운 지인들의 장례식이 있을 때마다(지인 중 연로하신 분이 많기 때문에) 생각하게 되는 화두였는데,

올 해는 특히나 자주 나의 일상을 관통하고 흔들어 놓았다.

실상 매일이 죽음의 연속이고 매일이 삶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디 사람이 그런가, 삶에 대해서는 확신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의심한다.

오히려 삶은 의심스러운 것이고 확실한 것은 죽음인데도.


전신마취를 하기 전 -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지만 그 당시는 나름 진지하게 -

내가 이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질문했다.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면서도, 

사람이 환자복을 입고 있으면 마음이 약해지고 쓸데없는 걱정이 물밀듯 밀려오는 법이다.

그 약해진 마음으로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던  그때, 내가 발견한 한 가지는 

나는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던 불상사는 역시나 일어나지 않았다. 고맙게도.

수술이 잘 끝나 마취가 깨고 첫 번째 밤을 보내면서 이제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다.

아무 준비 없이 당황한 채 죽음을 마주하지 말자고, 아무 준비 없이 표류하듯 살지 말자고.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관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매일을 새 삶인 듯 살아야겠다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죽음 앞에 서는 것을 보며 또 생각했다.

상실과 눈물과 후회로 얼룩진 죽음의 현장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고마움과 토닥거림과 넉넉한 수용으로 죽음을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을지.

어떻게 매일 죽어야 진짜 삶을 살 수 있을지.


꼭 필요한 화두와 고민을 던져준 2015년이었다.

한 뼘 더 나를 자라게 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참 힘들었다.

잘 몰랐는데 이제와 보니, 괜찮은  척했지만 정말 힘들었나 보다.

2016년을 이렇게 기다리는 것을 보면.


2015년은 내일 하루가 더 남았지만 아마도 내일은 정신없이 지나가게 될 것이다.

만두를 빚어 잔치를 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 먼저 2015년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고. 

언젠가 돌아보면  그때가 좋았지라고 할 날이 분명히 올 테니까

우리  그때 또 만나자고. 


마침 눈이 내려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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