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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Apr 06. 2016

장날

장에서는 주로 이야기를 판다

장터는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어렵지 않게 주차할 자리를 찾아서 사람이 아직 별로 없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튀김 장수는 이미 튀김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나를 유혹했다. 새우튀김, 고구마튀김, 김말이 튀김, 오징어튀김 등 보기만 해도 맛이 그려지는 노릇노릇한 튀김들이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이내 내가 이 장터에 온 목표를 기억해내고 튀김 장수를 지나쳐 장거리로 깊이 들어갔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나타난 버섯 장수를 만났다. 한눈에 보아도 딴지 얼마 되지 않은 탱글탱글한 버섯들이 탐스럽게 담겨 있다. 이천 원어치를 산다. 그것만 해도 오늘 저녁 반찬으로는 남을 양이다. 

시장 사거리쯤에 들어서니 생선장수가 여럿 보인다. 일단 모두 둘러본다. 나는 주꾸미를 살 것이다. 주꾸미를 가져다 놓지 않은 생선장수는 없다. 그만큼 지금이 제철이라는 소리다. 냉동된 녀석들도 있고 생주꾸미도 있는데 모두 양이 맘에 들지 않는다. 사거리를 서성거리다가 시장길 끝에 서 있는 트럭을 발견했다. 주꾸미 트럭이다. 기다리던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운 마음으로 성큼성큼 걸아가 한 소쿠리를 얼른 산다. 머리 색이 회색을 띠는 것이 국산 주꾸미다. 중국산이었다면 황토색을 띠고 있었을 것이다. 덤으로 몇 마리 더 넣어주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다음 장에도 오시느냐고 묻는다. 다음 장에 주꾸미가 싱싱한 놈이 들어오면 오고 아니면 종목을 바꾸신단다. 종목이 바뀌어도 이 자리에 있을 터이니 그때도 찾아오면 덤을 더 많이 준다고 나를 꼬신다. 

주꾸미를 샀으니 이제 미나리를 찾아야 한다. 반찬 장수를 지나고 두부장수를 지나고 나니 야채 장수가 있다. 미나리도 이천 원이라는데 양이 엄청나다.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어 천 원어치만 파시면 안 되냐고 물었다가 한 소리 듣는다. 이걸 데치면 숨이 푹 죽어서 한 접시 밖에 안된단다. 어느 집 접시가 이렇게 크냐고 받아치고는 웃으며 한 봉지를 산다. 건너편 씨앗 장수에게서 방울양배추 씨앗과 모둠 쌈채소 씨앗을 사서 기르는 법까지 강의를 한 바탕 듣고 나서야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장터는 이런 곳이다. 물건만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도 팔고 노하우도 덤으로 얹어 주고 농담과 하소연으로 더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팔리는 물건보다 오가는 이야기가 더 많고, 정가보다는 에누리와 덤이 주인공인 곳이다. 그래서 우울하거나 지치거나 무료할 때는 아무것도 살 것이 없어도 시장에 간다. 물론 그나마도 5일에 한번밖에 없으니 우울할래도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오늘은 전혀 우울하거나 무료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시장에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장 봐온 재료로 처음 끓여본 주꾸미 전골의 맛도 기가 막혔고 넘치는 미나리로 급조한 미나리전의 향긋함도 기분 좋았다. 

다음 장에는 새우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서 꼭 먹고 와야겠다. 현금을 다 써버려서 맛도 못 보고 온 것이 아쉽고 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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