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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Apr 11. 2016

시간과 바람과 햇살에 맡긴다

간장, 막장, 마늘고추장 담그기

어제는 장을 담갔다.

그 시작은, 한 달쯤 전에 커다란 통에 메주와 소금과 물을 넣고 몇 개의 숯과 고추를 넣어 두었던 것이다. 물론 그 메주를 쑤는 것부터를 이야기해야겠지만 메주를 쑤고 띄우는 일은 직접 해 보지 않은 일이라, 마치 전설 속의 한 장면처럼 상상만 할 뿐이다. 한 달이 지난 메주와 소금과 물은 신기하게도 간장이 얼추 되어 있었다. 간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 시커먼 물을 잘 걸러서 큰 솥에 한 가득 넣고 은근히 끓이면서 계속 올라오는 거품을 걷어주는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몇 시간 내내 그 솥 옆에 앉아서 뭉글뭉글 끓어오르는 거품을 걷어낸다. 그 거품을 잘 걷어내 주지 않으면 간장이 익고 나서 달큼하고 맛있는 냄새가 아니라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르게 된다. 그러니 간장 만들기에서 가장 지루한,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작업은 이 시커먼 물을 달여서 거품으로 올라오는 불순물들을 제거해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인 간장은 항아리에 옮겨 넣는다. 이렇게 한 줄로 쓰자니 참 간단하지만 사실은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해야 하는 일이다. 간장 달이는 솥을 장독대 옆으로 옮기지 않는 한, 그 큰 솥을 통째로 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항아리를 솥 옆에 두고 옮겨 담자니 그걸 다 옮겨 담은 다음 그 항아리를 들어 장독대로 가져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 명이 달라붙어 한 솥씩 퍼다가 장독대 위에 잘 씻어 말려놓은 항아리에 부어야 한다. 이제 옮겨 담는 것까지 끝났으면 사람이 할 일은 거의 마무리된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시간과 바람과 햇살이 맡아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일은 그 항아리를 매일같이 닦아주며 아껴주는 일이다. 


이렇게 독 하나를 가득 채워 넣으니 맘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다.

 


다음은 막장이다. '막장 드라마'할 때 막장이 아니라 된장, 고추장, 간장처럼 장 이름이다. 내 생각에는 가장 맛있는 장이 막장 같은데 왜 이름이 막장일까 싶다. 막 담근다고 막장이라는데 막 담근다고 하기엔 손이 정말 많이 간다. 먼저 잘 말린 메주를 갈아와야 한다. 메주만이 아니라 고추씨도 갈아오고 보리쌀도 갈아온다. 보리쌀은 갈지 않고 할 수도 있지만 갈아서 하기도 한다. 하는 사람 맘이다. 갈아온 메주 가루는 장을 담그기 한 일주일 전에 펄펄 끓는 물을 부어 불린다. 이걸 어르신들은 '풍긴다'고 표현한다. 메주가루를 풍겨놓는 이유는 가루가 잘 불어서 부드럽게 되기도 하고 잡내도 날려버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장 담그기 이틀 전에 보리쌀을 미지근한 물에 불려놓는다. 그리고 다음 날 불린 보리쌀에 물을 부어 죽을 쑨다. 미리 불려놓는 이유는 죽을 쉬이 쑤기 위함이다. 


이번에 이 '장죽'이라고 하는 보리 쌀죽을 나 혼자 쑤는데 그때의 마음의 떨림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얼마나 끓여서 얼만큼의 된 정도를 맞춰야 하는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때는, 설명을 듣기만 할 때는 이까짓 거 뭐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무도 없이 혼자 해 보려니 그동안 들었던 설명은 모두 벼락치기 한 한문시험처럼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말로 설명한 것은 모두 날아가고 남아 있는 것은 죽을 저을 때 느껴지는 손맛뿐이었다.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저어 눌어붙지 않게 하는 것이 장죽의 핵심이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불을 끄면 되는데 그 적당한 때란, 손이 알려준다. 그러니 한 번 옆에서라도 보고 내 손으로 나무주걱을 저어보지 않고서는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다음 날 어르신들께서 오셔서 장죽을 잘 쑤었다며 내년에는 장을 혼자 담가도 되겠다며 농담을 하시는 것을 듣고서 마음이 얼마나 놓이던지. 한 솥 가득 끓여놓은 장죽을 망치기라도 했다면 어쨌겠는가. 홍수로 맞춘 것이지만 어쨌든 적당한 묽기로 장죽이 잘 쑤어져서 천만다행이었다. 


이 장죽에 풍겨놓은 메주가루와 간 고추씨 가루, 달인 간장을 넣는다. 이때 간장 거르고 남은 메주덩어리를 넣는 사람도 있고 넣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메주덩어리를 손절구로 찧어 잘게 으깬 다음 모두 넣었다. 메주를 만든 콩도 모두 어르신들께서 농사지으신 콩이니 얼마나 아까운지 버릴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재료를 넣고 열심히 젓기도 하고 손으로 주무르기도 하며 간을 맞춘다. 간수를 뺀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데 이때 간은 짜다 싶게 맞추어야 익으면서 상하지 않고 맛이 든다. 그 간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간이다. 처음 간장을 만들 때도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대략적인 레시피야 있겠지만 정답은 없다. 모두 먹어보고, 간을 보고 적당하다 싶은 때가 있는 것이다. 보통 밥 먹을 때 간하고는 또 다르다. 장은 짠맛이 있어야 한다. 상하지 않고 익으면서 적당해 지는 간이 있는데 이것도 내 혀에 닿아 익숙해져야만 알 수 있는 간이다. 톨스토이가 와도 글로는 설명할 수 없다. 다 버무려 간을 맞춘 막장을 항아리에 옮겨 담는다. 이때 버무리는 일을 아주 장독대에 와서 하면 옮기는 힘은 덜 수 있다. 재료들은 모두 따로 들고 와서 장독대 위, 항아리 옆에서 버무린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항아리에 옮겨 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항아리에 담긴 막장은 붉기도 하고 누렇기도 한 색이다. 이렇게 항아리에 옮겨 담은 막장도 시간과 바람과 햇살에 맡겨둔다. 그리고 항아리를 매일 잘 닦아주면서 정성을 함께 익혀야 한다.

  

이 막장이 다 익으면, 그래서 이 장으로 장국을 끓이면,,, 아 생각만 해도 구수하다. 침 꼴깍.


마지막으로 간단히 마늘고추장을 담근다. 마늘장은 아주 곱게 간 고춧가루와 비슷한 양의 곱게 간 마늘이 주 재료다. 이 둘을 효소로 버무린다. 이때 들어가는 효소는 매실진액, 사과 진액 같은 것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내가 담근 자두 진액을 걸러 이 마늘장에 넣었다. 재작년 여름, 자두가 많이 달렸다며 한 소쿠리를 가져다주신 것을 먹다 먹다 그냥 썩힐 것 같아 진액을 만들어 두었더랬는데 그 진액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잊고 지내다가 진액이 모자라다는 이야기에 생각이 나서 다용도실 한 구석에 고이 잠든 녀석을 깨워 들고 나왔다. 가라앉은 자두는 장아찌가 되어 있어 점심에 고추장을 무쳐 반찬으로 먹었고 잘 거른 진액은 이 마늘장에 들어가 함께 맛을 내게 되었다. 이런 뿌듯함 때문에 엄마들이 그 수많은 진액과 김치와 장을 담그시는 게 아닐까. 처음으로 만들어본 진액으로 장까지 담게 되다니 나는 마늘장을 버무리는 내내 스스로가 대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말이다. 이렇게 대견하고 새빨갛게 버무린 마늘고추장도 작은 항아리에 옮겨 담는다. 그리고 역시 시간과 바람과 햇살에 맡긴다. 

처치 곤란이던 자두가 고추장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이번이면 벌써 내 평생의 세 번째 장 담그기에 참여한 셈이다. 첫 번째 장은 여름 수해로 마을을 덮친 산사태에 떠밀려가 맛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두 번째 장은 맛있게 먹고 항아리가 비어 가는 중이고 이번이 세 번째 장이다. 장을 담글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장을 담글 줄 아는 주부들이 점점 할머니가 되어가시고 어느 순간 돌아가시고 나면,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 어머니 세대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 내가 혼자 장을 담글 수 있을까? 우리 세대 중에 장을 담그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니 직접 기른 콩으로 메주를 쑤고 직접 키운 고추를 말려 고춧가루를 만들어 장을 담그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말이다. 경험하면 할수록 글로는 전해지지 않는 손맛과 혀끝의 감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걸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참 신이 나고 시골 사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된 하루였다. 


장은 이제 사람의 손을 떠난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도 하고 또 꼭 그렇지만도 않기도 하다. 시간과 바람과 햇살이 대부분의 일을 해주어 맛이 들어갈 테지만 거기에 더해 사람의 손길이 정성스레 더해져야 더 맛있는 장을 만들 수 있다. 매일 장독대에 올라가 항아리들을 닦아주는 정성 말이다. 바람이 불어 항아리에 먼지가 켜켜이 묻으면 항아리가 숨을 잘 쉬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항아리를 잘 닦아주어 먼지를 제거해주어야 항아리가 숨을 잘 쉬고 장이 더 맛있게 익는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그 집 안사람이 살림 잘 하나 보려면 장독대를 보면 된다.'는 말이 단지 집안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잘 보이지 않는 장독대까지 잘 닦을 정도로 부지런하다는 정도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장의 맛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이 내 몫이라는 것도. 함께 먹을 장을 함께 담근 것이지만, 이 장독대는 우리 집 뒷마당에 있으니 항아리를 닦아주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의 일이다. 내 정성을 더하고 더해 먹고 기절할 만큼 맛있는 장이 완성될 수만 있다면 비록 게으름이 온몸에 묻어 있는 날라리 주부인 나라고 해도 이 한 몸 던져볼 의향이 있다. 장들아, 잘 익어주길. 그리고 장이 익는 동안 이 게으른 나도 바지런한 주부로 잘 익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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