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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Apr 15. 2016

개구리는 살아있다

4월 16일을 한 시간 앞두고

마을에 산사태가 일어난 후 세 해를 지나는 동안 동네에는 공사가 참 많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물길을 콘크리트로 포장하고 흙이 쌓여 높아진 개울에서는 흙을 퍼 올렸다. 그러는 동안 작은 도랑과 개울에는 포클레인이 훑은 자욱들이 늘어갔다. 재해 예방을 단단히 한다며 이런저런 공사를 하는 동안 인부들은 일자리를 얻고 포클레인 기사들도 살림이 넉넉해졌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가을에 일을 하던 작업부들은 포클레인이 개울을 뒤집어엎으면서 뛰쳐나온 개구리들로 겨울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했다. 물론 잡는 것도 먹는 것도 불법이었지만 날마다 몸보신을 위한 솥이 공사장 옆에 걸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온 동네 개구리를 잡아먹은 인부들은 공사가 끝나고 유유히 떠나갔지만 집도 잃고 가족도 잃은 채 살아남은 몇몇의 개구리들은 겨우내 울지도 못하고 숨 죽인 채 지냈을 것이다.


해가 바뀌어 봄이 돌아왔지만 마을에는 개구리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동네 어르신들은 혀를 끌끌 차며 가을에 그렇게 개울을 다 뒤집어엎어놓았는데 남아난 것이 있겠냐고 했다. 잡아 먹혔든지 포클레인에 깔려 죽었기 십상이었을 것이라며 동네 개구리의 씨가 말랐다고 쉽게 말을 내던지셨다. 봄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나를 무척 놀라게 했다. 개구리 울지 않는 산골의 봄 밤은 도시의 봄 밤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멀리 출타를 했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개울가에서나 논두렁에서 개구리들이 우렁차게 울어대는 소리가 들리면 얼마나 반갑고 푸근했는지 모른다. 이제 집에 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말이다. 4월이 보름이나 지나도록 개구리는 울지 않았다.


걱정은 실망이 되고 실망이 한숨이 될 무렵, 오늘 나는 개울가에서 네댓 마리의 개구리들이 울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이전의 봄 밤에 비하면 한 없이 작은 소리였지만 분명 누가 들어도 개구리울음 소리였다. 개구리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거칠고 앞 못 보는 포클레인 앞에서도, 욕심에 혈안이 되어 제 몸 생각뿐인 인간들 앞에서도 개구리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작은 소리지만 다시 합창을 시작했다. 언젠가 개구리가 이 봄 밤에 울지 않는 날이 정말로 올지도 모른다. 더 이상 개구리를 이 마을 개울이 아닌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날이 정말로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봄은 아니다. 이번 봄에는 아직 살아있다. 살아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드러내며 몇 안 되는 그들이 모여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귀를 크게 울리도록 우렁찬 소리는 아직 아닐지 몰라도 분명하고 또렷한 소리로 그들은 다시 울고 있다.


다시 돌아온 4월 16일을 한 시간 앞두고 나는 살아남은 개구리들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노랫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가 이 봄 내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별처럼 떠 있는 목련꽃 아래 서서 이 반가운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나는 노란 마음을 가만히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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