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우개연필 Apr 20. 2016

나물 얻어먹는 계절

이 산에서 나는 나물을 오래도록 얻어먹기 위한 나의 작은 하소연

양지바른 산 등성이에는 산벚나무가 듬성듬성 피어 연분홍 물감이 묻어있는 듯하고 집 앞 개나리도 노랗게 활짝 웃는다. 때가 되면 언제든 돌아오는 봄이라지만 그 봄의 모습이 매해 꼭 같은 것은 아니다. 어느 해는 목련이 유독 예쁘고 어느 해는 버섯이 특별히 많이 나기도 한다. 언제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복되는 봄도, 반복되는 일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은 다르고 조금씩은 새롭다. 그 다름과 새로움을 발견하는 사람만이 일상을 지루하지 않게 살 수 있다. 늘 똑같다고 생각하고 무심히 지나가면 정말 늘 지루하게 똑같다. 시골 살이의 즐거움은 이런데서 온다. 늘 비슷한 시기에 날씨가 풀리지만 봄마다 비가 내리는 정도가 다르고 바람이 부는 날이 다르다. 올해는 유독 바람이 강하게 느껴진다. 작년에는 봄에 비가 너무 오지 않아 모내기도 하기 힘들겠다며 걱정을 했는데 올해는 비도 알맞게 와 주고 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버섯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곳에 살면서 알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너무 비가 자주 내려도 버섯과 나물이 자라지 못한다. 며칠 간격을 두고 적당히 비가 내려야 버섯 따고 나물 뜯는 산골 주민에게는 좋다. 하지만 산골에 산다고 모두가 산에 다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마을에도 산에 다니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는데 그분들도 마치 야생동물처럼 구역이 대략 정해져 있다. 대부분 자기 집 뒷산부터 시작해서 어느 능선까지로 매년 비슷한 길을 다니신다. 말이 길이지 등산로처럼 실제로 길이 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와 수풀을 헤치고 어느 바위 건너 어디쯤 버섯이 자라고 그 옆 개울 너머에는 취나물이 잔뜩 자라고 하는 것은 그 산에 다녀보신 분들만 아는 것이다. 그러니 나 같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산에 아무리 올라가도 두릅 한 움큼 따기 어려운데, 늘 산에 다니시던 분들은 해뜨기 전에 올라갔다가 점심 먹기 전에 내려오시면서 하루 일당을 배나 넘기고도 남을 만큼의 버섯과 나물을 한 짐 가지고 오신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면 그 날의 수확물을 팔러 장에 나가신다.


이 맘때쯤이면 도시에서 나물 원정을 오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분들 중에는 전국 팔도 나물 많다고 하는 산을 골라 다니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어느 산에 겨우내 벌목을 하고 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벌목을 해서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산에는 그 이듬해 봄에 해가 잘 들어 나물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때는 오전에 밭일을 좀 하시다가 슬슬 나물 좀 뜯어볼까 하고 올라간 동네 주민은 거의 빈손으로 내려올 때도 있다. 한바탕 차들이 몰려와서 색색깔의 기능성 옷을 입고 커다란 봉지를 저마다 하나씩 손에 든 사람들을 내려놓고 나면, 그 산은 벌거숭이가 되기 때문이다. 산골 사람들은 일단 이런 차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먹을 나물을 다 가져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데 이유가 있다. 


이렇게 한 번 왔다가 가시는 분들은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일주일 후 혹은 내년 봄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산이 초토화되다시피 한다. 나물은 뿌리째 먹는 냉이나 고들빼기, 잔대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보통 줄기와 잎만 따면 된다. 곰취, 며늘취, 나물취, 떡취 등 취나물은 어린잎을 주로 먹는 것이고 미나리싹이나 원추리, 산머위 등 여타의 나물들도 대부분 그렇다. 그리고 인기가 정말 많은 두릅은 나무에서 돋아난 새순을 먹는 것이다. 그러니 뿌리를 뽑을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산나물은 캐는 것이 아니라 뜯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잘 모르시는 것인지, 아니면 뜯는 게 손이 여러 번 가니까 한 움큼 쥐고 뽑는 게 편해서 그런지 아주 뿌리째 뽑아가시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는 그해 봄에는 다시 나물이 자라지 않는다. 산나물은 뿌리를 남기고 적당히 야들야들한 부위에서 뜯는으면 된다. 비가 내리면 그 잎이 또 자라게 마련이고 그러면 또 뜯으러 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나물이 여름에 억세게 자라 그 자리에 씨를 뿌리면 이듬해 봄에 다시 연한 싹으로 다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마을 어르신들은 나물을 뿌리째 뽑아오지 않으신다. 두릅은 나무에서 자라기 때문에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나무를 상하지 않게 해야 이듬해에 또 두릅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높은 곳에 있어 손이 잘 닿지 않는다고 해서 나무줄기를 꺾어서 순만 따고 단단한 가지는 버리는 등의 일을 일삼다가는 두릅나무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이듬해에 이 산에서 또 두릅을 딸 생각이 있는 사람은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가끔 저지르시는 분들이 있다. 내년에는 다른 산에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더 심한 경우 더러, 집 뒤뜰에 심어놓은 취나물과 산마늘 같은 작물을 산나물처럼 캐가시는 분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나는 도시에서 나물 뜯으러 온 사람들은 모조리 다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봄에 푸릇한 기운이 돌 때 이 산 저 산 다니면서 삼삼오오 즐겁게 나물을 뜯으러 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뜯어간 나물로 도시의 지옥철을 뚫고 퇴근한 남편과 아들딸에게 산의 향기로움을 전해주는 것은 또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일 것인가. 산은 우리가 일부러 망가뜨리지 않는 한, 산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풍성히 먹을 수 있는 풍성한 생명을 품고 있다. 다만 산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이 산에서 나오는 나물을 뜯어 팔아 손녀 학비를 벌어야 하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사실을, 차를 타고 전국 팔도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이 한 산에서 먹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다. 이곳의 몇몇 어르신들은 바람 쏘이시라고 다른 경치 좋은 곳에 모시고 가도, 산세를 보니 어디쯤에는 어느 나물이 많이 나겠다는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시는 분들이니 말이다. 그저 봄에 한 두 번 나들이 삼아 나와서 뒷 일이야 어찌 되었든 내 봉지만 채우면 그만인 분들은 산에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국유림이 아닌 이상 산에도 주인이 있고, 허락 없이 들어와 나물을 뜯어갈 수 있는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훼손까지 하고 가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서 드는 생각이다.


나는 나물을 볼 줄도 모르고 산짐승이 무서우며 산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아 나물을 뜯으러 산에 가지 않는다. 어르신들은 나물도 볼 줄 모르며 멧돼지를 무서워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 나물을 팔러 가실 때 가끔 우리 집 앞에 갓 뜯은 나물이 든 검은 봉다리 하나 놓고 가시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이름도 모르는 나물을 먹는다. 가끔 생으로 먹어야 하는 나물을 데쳐 먹기도 하고 데쳐 먹어야 하는 것을 생을 먹기도 해서 더욱 어르신들의 안쓰러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제 하나씩 배워가고 있지만 텃밭 농사를 애완견을 돌보는 일이라고 친다면 산나물은 야생의 세계 같은 느낌이라 아직 그 세계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저 떨궈 주시는 것만 해도 우리 식구 먹기에는 늘 남아서 오히려 나물로 장아찌 담아 오래 보관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정도이니 더욱 그렇다.


이 나물의 이름은 뭘까? 분명 익숙한 비주얼인데 매년 여쭙기도 민망하다.


이 산골 마을에도 나물 먹는 봄이 왔다. 서울의 벚꽃은 다 졌겠지만 이곳은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본격적으로 나물 철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비도 적당히 잘 내리고 있고 날씨도 좋으니 버섯도 많이 나고 나물도 잘 자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이 베푸는 향기로움을 풍성히 즐겼으면 좋겠다. 언제나 비슷한 것 같고 똑같은 나무로 몇십 년을 살아가는 산이지만, 자세히 보면 꽃의 빛깔이 매년 다르고 초록이 뒤덮이는 속도도 매년 다른 신기한 이 산. 그러고 보면 산에 많이 자라는 나물의 종류도 조금씩 달라지고 자라는 버섯도 조금씩 다른 것은, 그 산에 살고 있을 멧돼지와 산토끼를 위한 것은 아닐까. 똑같은 나물만 먹으면 지겨울까 봐, 똑같은 버섯향만 맡으면 심심할까 봐 그런 것은 아닐까. 사람들도 물론 산에 기대어 살긴 하지만 그보다는 람쥐람쥐 다람쥐와 멧돼지와 산토끼와 고라니들이 산의 진짜 주민이니 말이다. 


어제 주신 이 나물은 또 어떻게 먹어야 하는 것일까. 음, 이 나물은 생으로 무쳐 먹는 나물일 것이라고 찍어 봐야겠다. 찍은 답이 맞을지는 나중에 어르신을 만나면 여쭤봐야 한다. 맞았으면 기쁜 일이고 만약 내가 또 틀렸다면, 그건 또 그 자체로 재미있어라 하시니 웃음으로 한 번 어르신들의 나물 인심을 갚아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구리는 살아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