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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Jun 11. 2016

옥수수밭에 비가 내리면

지금의 이 평화와 한적함과 향기로움과 고마움이 당신에게도.

투두둑 투둑.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려준다. 우산을 들고 보도블록을 걸어가고 있을 때의 소리와 버스정류장 좁은 지붕 아래서 듣는 소리는 분명히 다르다. 마찬가지로 옥수수밭에서 듣는 소리와 고추밭에서 듣는 빗방울 소리는 다르다. 비닐을 깔아놓은 밭인지, 노지 밭(비닐을 깔지 않고 흙에 바로 작물을 심어놓은 밭)인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투두둑 투둑 둑.

옥수수밭에 비가 내리면 나는 꼭 우산을 쓰고 밭으로 간다. 내가 생각하기에 옥수수 밭에서 듣는 빗소리는 세상 어느 멋진 곳에서 듣는 빗소리에 견주어도 지지 않는다. 세상 멋진 곳을 모두 돌아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처음 빠리에 갔을 때 들었던 빗소리와도,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들었던 빗소리와도, 배낭을 도둑맞고 빈 손으로 마드리드로 향하던 기차역에서 들었던 빗소리와도, 신혼여행으로 갔던 그 바닷가에서 들었던 빗소리와도 견줄만하다.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경쾌하게 한번 튀어 오른 뒤 다시 조금 옆자리에 떨어진다. 그리고는 또르르 굴러 아래쪽 잎에 떨어지거나 아니면 땅에 씌워놓은 검은 비닐로 떨어져 다시 한번 튀어 오른다. 빗방울 소리가 한번 '똑' 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빗방울이 각기 다른 소리로 여러 번 변주한다. 그러니 셀 수 없이 많은 빗방울들이 수많은 옥수수 잎과 만나 만들어내는 그 수많은 빗소리는 온 귀를 채우고 온 몸을 휘감기에 충분하다. 그 하나하나의 소리는 또 얼마나 경쾌하고 신나는지.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지난주에 애써 심어놓은 옥수수 모종들은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모종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른 입술을 적시며 하늘에 구름을 찾아보았을지 모른다. 나는 이 아이들이 안쓰러워서 해질 녘에 나가 호스로 물을 뿌려 주곤 했다. 한번 물을 줄 때 보통 한 시간씩 걸리는데 그것도 호스가 닿는 데까지만 겨우 줄 수 있었으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멀리 심긴 작물들은 아쉬움에 목이 더 말랐을지 모를 일이다. 마을 입구의 해가 잘 드는 넓은 밭의 옥수수 잎은 조금씩 말라가기까지 하고 있었다. 내 밭이든 남의 밭이든, 옥수수 잎이 말라 가는 것을 보면 나는 꼭 손을 한 번씩 비비게 된다. 내 손에 물기가 다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가뭄이 심해 이러다가 옥수수가 모두 말라죽는 것은 아닐까 싶은 때가 참 많았다. 정말 말라서 죽은 옥수수밭도 심심치 않게 보였고 그런 밭을 볼 때면 나는 또 손을 한 번씩 비비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옥수수들은 강했다. 내가 볼 때 옥수수들은 단 한 번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적이 없었다. 말라가고 있는 옥수수 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가끔은 흠뻑 젖어 생기가 넘치는 때보다 더 진한 생명력이 느껴지곤 했다. 옥수수들은 늘 마지막까지 있는 힘껏 살았다. 마른 입술을 마른 혀로 적셔가며 단 한 방울의 이슬이라도 더 빨아들이면서 꼿꼿이 서 있었다.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옥수수는 절대 몸을 땅에 흐트러트리지 않고 서 있는 채로 말랐다. 그리고 그렇게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도 소나기라도 한 차례 내리면 이내 살아나고, 또 살아났다. 가뭄에 옥수수를 보면 생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이렇게도 끈질기게 이 옥수수들을 독려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에게는 힘이 들어 그냥 포기할까 싶은 순간은 없는 것일까. 아직까지 나는 끝이 오기 전에 지레 포기하고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옥수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이 올 때까지 옥수수가 하늘을 바라보며 한 줌의 구름에도 소망을 가지고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는 나는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올해는 가뭄이라고까지 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요 며칠 조심스레 걱정을 했다. 그러다가 오늘 반갑고도 반가운 소나기가 몇 차례 내린 것이다. 오래도록 내린 비는 아니었지만 땅을 적시기엔 충분했다. 뿌리까지 흠뻑 젖기는 못했겠지만 아쉬운 대로 해갈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호스로 뿌려주는 물로도 환호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오늘 내린 소나기는 얼마나 반가웠을까. 오늘 밤과 내일까지 몇 차례 소나기가 더 온다고 하니 어린 옥수수도, 벌써 대궁이 굵어지기 시작한 옥수수도 축배를 들며 파티를 열기엔 아마 충분할 것이다. 한밤중에라도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잠깐이나마 나가볼 작정이다. 


얼마전 심어놓은 어린 옥수수. 이파리 끝이 말라가고 있었는데, 참 다행이다.




비가 그친 옥수수밭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어느새 내 심장 높이까지 자란 옥수수 잎 사이에 집을 짓고 숨어 있는 거미도 발견했다. 거미줄도 시원치 않고 별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비 오는 날은 쉽니다'하는 메모를 붙여놓고 가게문을 닫고 낮잠을 자고 있는 작은 구멍가게 주인 같다. 

저 거미줄로는 하루살이도 한 마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오늘은 쉽니다'




비가 옥수수만 자라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이도, 호박도, 참외도, 토마토도 모두 자란다. 나는 단지, 한 손에 서너 개씩 쥘 수 있는 작은 모종을 심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모종들은 너무나도 착실하고 게으름을 모르는 녀석들이라 내가 한 수고와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일들을 해 내고 있다. 내가 찾아다니며 수고한다고 인사를 한 것도 아닌데 다들 열매를 키워내느라 여념이 없다. 아직은 너무나 작고 심지어 열매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또 어느 순간, 내가 잠시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이 녀석들은 어서 이 열매를 따 가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그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개구리가 어느 때보다 힘차게 울어대는 밤이다. 젖은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나가고 밤나무 잎새에 걸려있던 빗방울이 작은 참새 날갯짓에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오늘 밤에 비가 또 내릴 것이다. 그 기대만으로도 나는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찰랑거리고 감사가 차 오른다. 


나의 소소한 몇 줄 글을 타고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평화와 한적함과 향기로움과 고마움이 내 집 내 책상 창가뿐만 아니라, 어느 집 어느 창가에라도 번져갈 수 있다면. 저 멀리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짖고 있는 개들과 스탠드 불빛에 모기장으로 모여든 몇 마리 나방에게도 전해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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