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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May 23. 2016

여기, 수국이 있었네.

하얀 수국과 작은 보라색 들꽃과 흰둥이의 발견



농사를 많이 짓는 집에서는 하루 종일 일해도 끝이 없는 게 농사지만, 나처럼 밭도 크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르는 초보 농사꾼은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있지는 않는다. 내가 밭에 나가보는 시간은 주로 해가 막 떠오른 아침과 해가 막 지고 난 저녁이다. 한 여름에는 해가 뜨기도 전부터 어르신들이 밭에 나가 일을 하신다. 그때가 하루 중 가장 시원하고 일하기 좋은 시간이라고 하는데 나는 게을러서 그렇게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어쨌든 게으른 나에게도 아침이 가장 일하기 좋은 시간인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보통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간단히 먹고 밭으로 나가는데 작은 밭이긴 해도 할 일은 늘 있다. 오늘은 매일의 숙제인 양배추 벌레 잡기 외에도 고구마 밭에 물도 주어야 하고 어제 얻어 놓은 야콘 모종도 심어야 한다. 양배추 벌레를 한 마리 잡고 나서 고구마 밭에 물을 다 주려고 밭에 나가니 흰둥이가 내 고구마 밭에 누워 있다가 후다닥 일어나 도망을 간다. 내가 키우는 개도 아니고 딱히 위협적이지도 않아서 우리 집 주위의 그늘에서 쉬고 있거나 밭에 누워 있어도 나는 늘 그냥 그렇거니 하고 지나쳐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흰둥이가 자꾸 눈에 밟히고 아침은 먹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 걸음 나아가 친해지고 싶기도 하다.


이 녀석은 원래 다리 건너 집에 살던 녀석인데 지금은 거의 들개가 되어가고 있다. 흰둥이는 원래 우리 마을 개가 아니다. 다리 건너 집 어르신이 다른 마을에서 이 개를 데리고 오실 때는 이미 강아지보다는 큰 수준이었다는데, 그렇게 큰 개를 데리고 오면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 흰둥이는 원래 주인집에서 많이 맞고 살았는지 어쩐지, 사람을 엄청나게 무서워하고 보기만 해도 피해 다닌다. 다리 건너 집 어르신은 개를 좋아하시는 분이라 흰둥이에게 잘 해주려고 많이 애를 쓰셨는데, 흰둥이는 어느 비 오는 캄캄한 밤에 임시로 매어놓은 초록색 목줄을 끊고 집을 나왔다. 그 후로 이 초록색 넥타이를 맨 것 같은 흰둥이는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남의 집 개밥을 훔쳐먹으며 살고 있다. 다리 건너집 어르신은 처음에는 흰둥이를 다시 잡아서 집으로 데려가려고 뛰어서 따라가 보기도 하고 밥으로 유인해 보기도 하고 수면제를 먹여보려고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시간이 지나 어떻게 해도 흰둥이가 잡히지 않자 어르신도 포기하신 상태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흰둥이를 '집 나간 개'라고 부르며 "저, 저 집 나간 개 말이야. 어제는 우리 집에 와서 개 밥을 홀랑 훔쳐 먹고 갔더라고. 그래서 개 밥을 두 번이나 줬어. 나 참." 하며 귀찮다는 듯이 이야기하시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이 개를 미워하거나 죽여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반응하지는 않으신다. 다만 나는 이름도 없이 '집 나간 개'로 불리는 것이 안타까워 처음에는 '초록색 넥타이 개'라고 부르다가 요즘은 흰둥이라도 부른다. 나에게도 그저 '집 나간 개'일뿐이었던 흰둥이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다 보니 약간은 친구가 된 것 같다. 물론 흰둥이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지만 말이다.

  

다리 건너집 어르신은 우리에게 흰둥이는 요즘 잘 지내냐고 물어보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 주변이 사람도 많지 않고 조용해서 맘에 들었는지 흰둥이는 요즘 주로 우리 집 주변을 거점으로 삼고 살고 있다. 가끔 문을 열고 나가면 집 앞 수돗가 그늘에 누워 쉬다가 문 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을 가기도 하고, 컨테이너 창고 옆 밭에 누워 있다가 내가 물 주러 밭으로 가면 또 훌쩍 뛰어 도망을 하기도 한다. 처음에 집을 나왔을 때는 산비탈에서 점프를 해 가며 푸드덕 거리는 야생 꿩을 쫓는 등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이었지만 요즘은 붙잡히지 않는 범위에서 사람 사는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흰둥이에게는 자유의 맛도 이제 시들해졌나 싶다. 어제는 혹시나 먹을까 싶어 저녁 먹고 남은 김치찜 국물에 식은 밥을 말아 창고 그늘 밑에 놓아두었더니 김치 꽁다리 하나 남기고 샅샅이 핥아먹었다. 그리고 해가 질 때쯤 고구마 밭에 물을 주러 나갔더니 이 녀석이 주변에 어슬렁 거리다가 내가 물을 준 비닐에 고인 물을 핥아먹는 것이 아닌가. 저녁으로 준 김치찜 국물이 졸아들어서 짰나 싶어, 밥을 주었던 그릇에 물을 받아놓고 집 안으로 들어가 몰래 창문으로 보니 물을 엄청 허겁지겁 마시는 폼이 김치찜이 짰던 게 분명하다. 흰둥이는 물을 마시며, 이 집 여편네는 무슨 국을 이렇게 짜게 끓이나 투덜거렸을지도 모른다.

  

김치는 왜 남겼니. 편식하지 마라, 흰둥아.


야콘을 심으러 아침에 밭에 나가니 흰둥이가 또 밭에 있다가 후다닥 뛰어서 도망을 간다. 그래도 전처럼 꽁지가 빠져라 멀리 도망가는 것은 아니고 내가 밭일을 시작하면 밭 가장자리쯤 와서 또 앉아 있는다. 밥도 주고 물도 주었더니 나에게는 조금 마음을 연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이 밭이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고구마 밭에 물을 흠뻑 주고, 두둑을 만들어 비닐을 씌우고 야콘도 심고 나니 해가 높이 떠 더워지기 시작한다. 흰둥이가 편히 창고 그늘에서 쉴 수 있도록 나는 이만 밭에서 나가기로 했다. 내 밭이지만 내가 밭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흰둥이가 밭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나는 아침저녁 잠깐씩 나가지만 녀석은 해를 따라 그늘이 움직이는대로 자리를 옮겨가며 하루 종일 밭에 있다. 밭작물을 망가뜨리지도 않도록 빈 비닐에 누워 있거나 고랑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면 농사를 좀 아는 개가 틀림없다. 이왕 있는 김에 밭에 풀도 좀 매 주면 좋겠지만, 자유로운 들개에게 그건 너무 무리한 부탁이겠지. 나는 요즘 한창인 수국한테나 놀러 가 보기도 한다.




집 앞에 수국나무가 한 그루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하얗게 수국이 피었다. 가지마다 공을 매달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씩 떠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공을 들여 만들어놓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같기도 한 수국이 피어있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시간이 되면 꽃마다 전등을 켜놓은 것처럼 환하게 빛이 난다. 어쩌면 밤에도 이렇게 환하게 빛나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주먹만한 수국꽃이 주렁주렁

 

이 수국나무는 우리가 이 집에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고 난 후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이 나무는 해마다 이맘때 하얀 꽃을 피워왔다. 그런데 이 꽃이 여기 있었는지, 나는 어제 처음 안 사람처럼 이 나무가 새롭게 보였다. 나무가 걸음을 옮겨 다닐 것도 아니고 어느 해는 건너뛰고 어느 해는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닌데, 난 어째서 그동안 수국이 이렇게 예쁜지 몰랐던 것일까. 수국이 해마다 열심을 내어 하얗고 탐스럽게 꽃을 피워 자랑스럽게 내놓은 것을 그동안 몰라주었다고 생각하니 수국 나무에게 참 미안했다. 가지가 휘청거릴 정도로 올해는 유난히 수국이 많이 피었고 꽃도 튼실하다. 그동안 이 아름다움을 몰라주었던 것을 반성하며 실내에서도 수국을 즐기기 위해 작은 센터피스를 하나 만들어 보았다.

수국 센터피스 

수국 꽃을 따러 가위를 들고나가다가 밭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이름도 모르는 작은 보라색 들꽃이 눈에 들어왔다. 밭을 매다가 발견했다면 잡초라며 휙 뽑아 버렸을 텐데, 꽃꽂이를 하려다가 발견하니 좋은 부재료가 된다. 사실 이 꽃도 함께 꽂을 것이 없나 유심히 살펴보았기에 보인 것이지, 이 아이가 이렇게 커서 꽃을 피우는 동안 나는 밭 옆에 이 꽃이 있는 줄도 몰랐다. 오아시스를 물에 담가 놓고 화반을 찾는데 오늘따라 화반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급한 대로 유리로 만든 반찬통 하나를 꺼내어 오늘의 화반으로 삼고 꽃을 꽂았다. 꽃꽂이를 배워본 적도 없고 자주 하지도 않지만, 일단 내 눈에 좋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툭툭 꽂아놓았는데, 제법 그럴싸한 센터피스가 완성되었다. 실내로 가지고 들어와 창가 옆 테이블에 올려놓았는데 마침 햇살이 기가 막히게 들어와 꽃을 입체적으로 비춰주었다. 딱 그 순간, 오직 그 장소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해는 부지런히 움직여 더 이상 햇살을 이 창가로 비춰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수국이 거기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나, 늘 집 근처에 있던 흰둥이에게 이제야 밥 한 끼 챙겨준 것이나, 밭 옆에서 다 자라 꽃을 피울 때까지 몰랐던 작은 보라색 꽃까지. 오늘은 그동안 몰랐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저 무심히 지나치던 주변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자기 자리에서 얼마나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일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이,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이 이렇게 와 닿는 순간을 맞이게 될 줄 몰랐다. 하얗게 피어 탐스럽게 빛나는 수국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고 늘 내 주변을 어슬렁 거리던 흰둥이에게 이제야 처음 밥을 한번 주었다는 것이 부끄럽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서 예뻐하고 사랑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수국과 흰둥이처럼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상자 같은 소소한 행복이 내 주변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니, 산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싶다. 보물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눈이 휘둥그레질 금은보화는 아니더라도, 봄소풍에서 보물찾기 하는 어린아이의 콩닥콩닥하는 심장으로 오늘 하루를 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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