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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Jun 18. 2016

하루꽃

오늘 내가 지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 꽃의 이름은 하루꽃. 내 맘대로 붙인 이름이다. 꽃은 아주 작고 하얗다. 꽃 중심은 노란빛인데 수술과 암술이 노란색이어서 그럴 것이다. 꽃은 6월 초, 아주 잠깐 동안 핀다. 작은 계단을 둘러싸고 한 줄로 이어진 나무 담장이 있는데 바로 그 담장인 나무에서 피는 꽃이다. 꽃이 피어있는 그 잠깐 동안 이 작은 꽃은 어마어마한 향기를 내뿜는다. 향기가 진해서가 아니라 그 향기의 질이 어마어마하다. 너무 진해서 코를 쥐게 하는 향도 아니고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지는 향도 아니다. 계단에 서면 그 향기는 온몸을 감싼다. 코끝에만 스치는 향이 아니다. 향기는 라일락 같기도 하고 아카시아 같기도 한 어쩐지 그 향을 맡으면 무엇인가가 한 없이 그리워지는 그런 향이다. 꽃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자기 향기로 벌을 한껏 불러 모아 자기의 존재를 과시한다. 꽃마다 벌들이 윙윙거리며 맴돈다. 이 꽃에 갔다가 또 바로 옆에 핀 꽃에 갔다가 하며 벌들은 어째 한껏 취한 취객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단 하루만 피는 꽃은 아니겠으나, 잠시 잠깐 딴청을 피우면 어느새 다 지고 흔적도 남지 않는 꽃이라 나는 몇 년째 이 꽃을 딱 하루밖에 즐기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피었구나 하고 반가워하면 며칠 새 금방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 꽃을 하루꽃이라고 내 맘대로 부르고 있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은 하루꽃을 보며, 나는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바로 그 하루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향기를 내뿜으며 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그 하루가 바로 오늘일지 모른다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하루는 금방 지나간다. 어제는 그것이 존재했는지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지나가버렸고, 내일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몇 시간 남지 않은 오늘, 그 몇 시간 동안 나는 어떤 향기를 내뿜으며 살아야 할까. 오늘, 내가 지고 나면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누가 내 향기를 기억해주기나 할까.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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