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밭 산책에서 얻은 작지만 단단한 위로
아침 밭 산책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니 비가 쏟아진다. 안 그래도 작물들에게 요즘 비 소식이 드물어 목마르겠다고, 오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아쉬운 대로 호스로 물을 좀 끼얹어 주마하고 이야기하며 들어온 참이었는데, 반가운 비다.
요즘 밭에는 꽃들이 한창이다. 수박꽃, 참외꽃, 호박꽃, 오이꽃, 가지 꽃, 토마토 꽃 등 각종 꽃들이 밭을 밝히고 있다. 도시에만 살았다면 수박은 열심히 먹었어도 수박꽃은 몰랐을 것이고, 오이는 좋아했어도 오이꽃은 어떻게 생겼는지 가물가물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 모종을 심고 기르다 보면 열매보다 먼저 꽃을 알아보게 되고 열매의 단맛보다 이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먼저 알게 된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이제 각오를 해야 한다. 아, 바쁘게 따먹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하고.
초등학교 시절 암술, 수술, 씨방 해가며 꽃의 구조를 배웠던 것이 가물가물한데, 나는 요즘 이 꽃들을 직접 보며 복습하고 있다. 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등 위에 열매를 붙이고 살게 된다. 그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벌과 나비의 도움을 받아 수정을 한 꽃이라야 그렇겠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꽃들은 열매를 맺고 살다가 죽는다. 열매가 커지고 탐스럽게 자랄수록 꽃은 시들고 쭈글쭈글해지면서 나중에는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모든 오이와 호박과 가지와 등등의 작물들은 한때 꽃이었던 아이들이다. 우리는 흔히 다 자라 어엿한 모습의 오이와 호박을 보게 되지만 사실은 그 어느 것도 꽃이 아니었던 과실은 없는 것이다.
물론 꽃만 피어있는 것은 아니다. 수박도 벌써 갓난애 머리통만 하게 자랐고 참외도 작지만 튼실히 크고 있다. 호박과 오이와 가지와 고추와 토마토는 벌써 한 번씩 따먹기도 했으니 꽃만 피어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다 죽은 줄 알았던 고구마도 풍성히 잎을 가꾸고 옥수수는 벌써 한 줄기에 두 자루씩 자랑스레 키워내고 있다. 꽃이 피고 열매 맺는 풍성한 계절이다.
호박이나 호박꽃은 가끔 못생김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호박을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그 상징에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침에 호박꽃이 활짝 피어 한껏 하늘을 향해 노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그 꽃이 애써서 키워낸 윤기 나는 호박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싶다. 호박꽃과 오이꽃과 참외꽃이 아름답고 귀한 이유는 그들이 과실을 맺기 때문이다. 물론 그 꽃 자체로도 귀염상이고 이 노란빛이 대체 어디서 왔을까 싶을 만큼 환하기는 하지만, 이 꽃이 수고하여 키워내는 열매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게 아닐까.
가끔 삶이 그저 쳇바퀴 도는 것 같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있다. 어렸을 때 꿈꾸던 것 같은 멋진 삶이 아닌 것 같고, 나 자신이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것 같은 그런 때. 그런 생각이 드는 오늘 같은 날에 만나는 호박꽃과 오이꽃과 참외꽃은 나에게 큰 위로다. 사람이 말로는 할 수 없는 나지막한 토닥거림.
장미나 백합처럼 화려하고 크고 아름다워 비싼 값에 팔리지 못하고 시골 한 구석에 누가 알아주지도 않게 가만히 피어있는 호박꽃을 보며 나는 위로를 얻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생명을 키워내는 삶이라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에 순복하고 시절을 따라 열매 맺는 삶이라고.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잠깐 피었다가 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 못지않은 의미를 내 삶에서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늘을 바라보며 생명을 키워내는 삶을 살고 싶다. 때로는 가문 하늘 아래서 목이 마르고 짓궂은 새들에게 놀림받는 삶일지 몰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꿋꿋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를 가진 삶.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 호박꽃과 오이꽃과 참외꽃처럼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