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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Aug 23. 2016

옥수수, 안녕.

116일간의 옥수수 농사


빈 옥수숫대를 바라본다.

텅 비어 힘이 없어 보이는 빈 옥수숫대를 바라보며 그간의 옥수수와의 추억을 새겨본다.




옥수수를 심은 것은 5월 초였다.   

4~5차에 나누어 옥수수 모종을 한 두 판씩 심고 마지막에는 네 판을 심었다. 한 판에는 126개의 옥수수 모종이 자라고 그 모종은 하나같이 모두 성실하게 꿈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의 수백 배에 이르는 열매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옥수수는 하루에 꼭 얼마씩 제 몸을 하늘로 밀어 올린다.




아마도 누가 말을 해 주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옹기 종이 모여 서서 올림픽 매스게임을 하듯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일까. 한 박자씩 늦는 옥수수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비슷하게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쫑긋 내달았다. 이 동네에서는 옥수수 꽃을 개꼬리라고 부르는데 그 말을 듣고 보면 정말 개꼬리 같기는 하지만 엄연히 이건 옥수수가 피워낸 꽃이다.

개꼬리라 불려서일까. 볼 때마다 참 귀엽고 재미있는 옥수수꽃.




옥수수에게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들을 보며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다. 이 일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 내지는 못했을 거라고. 자기 자신의 수백 배에 이르는 열매로 자라나기까지 나는 하루도 옥수수가 자기 할 일을 팽개치고 드러누워 포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마른날도 있었고 그러다가 또 너무 세차게 쏟아져 이파리가 찢어질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또 30도를 훨씬 웃도는 7, 8월의 태양을 옥수수는 에어컨도, 모자도 하나 없이 온전히 제 몸으로 받아내었다. 그리고는 그 태양을 모두 자기 열매 속에 단단하게 채워 넣었다.

아마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제 몸을 누릇하게 구워 구수한 향기를 열매에 박아 놓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여름밤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을 반가워하는 마음이 달콤한 맛으로 스며들었는지 모른다. 만약 여름의 태양이 그렇게 뜨겁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별밤에 더운 몸을 식히며 산바람과 수다를 떨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덥고 뜨겁다는 나의 불평을 들으며 옥수수는 얼마나 말해주고 싶었을까. 이 단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느냐고, 이 구수한 향기가 누구 덕인 줄 아느냐고.

  


여름은 길어 보여도 모두 옥수수 속에 들어갈 만큼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뜨겁다며 그늘에서 쉬는 사이 옥수수는 벌써 터질 만큼 가득 여름을 채워 넣고 날 기다린다. 옥수수를 언제 따야 할지 모르는 초보 농사꾼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이는 까마귀다. 초대한 적 없는 이 손님은 어느새 밭에 내려와 앉아 가장 달고 맛있는 옥수수를 골라 배를 채운다. 까마귀가 옥수수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 옥수수가 가장 맛있게 익었다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짐승들은 자연의 때를 사람보다 정확히 알아차린다.


하지만 언제 옥수수가 맛있게 익는지 가장 잘 아는 녀석들은 멧돼지들이다. 옥수수를 딸 때쯤이 되면 농부들은 멧돼지로 골머리를 앓는다. 멧돼지는 한밤중에 새끼까지 줄줄이 달고 밭으로 내려와 옥수수 섶을 이리저리 젖혀 놓으면서 옥수수를 몽땅 먹어치우고 사라진다.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도록 밭의 한가운데부터 먹어치워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점점 밖에 있는 옥수수를 먹고 간다. 그러니 농부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옥수수를 보고 내일은 따야겠구나 하고 자고 일어나 다음날 새벽에 밭에 가보면, 옥수수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아, 그런 날 아침의 황당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마음이다. 땅콩밭과 고구마밭도 통째로 하나씩 해 먹고 도망을 가는 통에 동네에서 포수까지 불러 지켜보았지만 신기하게도 포수가 있는 날은 털끝 하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멧돼지들이 초보인 나를 배려해 우리 밭은 건너뛰었는지, 아니면 너무 집 가까이 있어 차마 오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밭 옥수수는 다 자랄 때까지 멀쩡했다. 물론 올해는 다행이지만 내년에 어떨지는 또 모를 일이. 멧돼지가 다녀가지 않고 까마귀가 깍깍거리는 아침이면 옥수수를 따야 한다. 물론 까마귀가 먹지 않더라도 옥수수수염이 마르기 시작하면 이제 결전의 그 날이 온 것이다.





옥수수를 따는 일은 내가 30여 년 살아오며 겪은 여러 가지 일 중에서 손에 꼽히는 신나는 일이다. 옥수수를 따면서 하늘을 향해 노래를 부르면 새벽인데도 그렇게 목청이 시원하게 뻗어나갈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나 싶을 만큼.


옥수수가 한창 자라던 어느 날, 청청하게 푸른 옥수수를 보면서 그동안은 옥수수 몇 개 심어서 나만 먹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나도 먹고 다른 곳으로도 흘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키운 옥수수를 올해 처음으로 지인들에게 30개, 50개, 100개에 얼마를 받고 팔았다. 그렇게 모인 옥수수 수익금은 전액, 그동안 내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핑계로 선뜻 돕지 못했던 몇몇 일에 후원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키운 옥수수여서 그럴까. 고맙게도 정말 잘 자라주었다. 농약 한번 치지 않았어도 김 한번 매지 않았는데도 어느 해보다 예쁘고 구수하고 달콤하게.


물론 옥수수 판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묵묵히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기 정말 힘든 나라임을 뼈저리게 체감하며 그나마라도 나눌 수 있는 게 어디냐고 위로를 해 보지만, 어쩐지 마음은 씁쓸하다. 물론 나야 농사가 본업이 아니니 씁쓸하고 만다지만, 여기에 생계가 달린 농민들을 생각하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가시지를 않는다. 옥수수 수확의 달콤함과 함께 농민들의 현실의 씁쓸함이 함께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다시 빈 옥수숫대를 바라본다.

옥수수를 한두 개씩 달고는 뒷짐을 지고 자랑스레 마실을 다니듯 서성이던 옥수숫대는 어느새 시들고 누렇게 변색되어 버렸다. 신기하게도 옥수수를 따고 나면 자기 몫을 다 한 줄 알고 시들어가는 옥수숫대. 하지만 베어내기까지 그들은 절대 쓰러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이렇게 꼿꼿이 서서 스스로 자기 몸을 말린 옥수숫대는 소 먹이가 되어 마지막 이파리 하나까지 쓸모 있게 생을 마무리하고, 옥수수 껍질은 다시 밭으로 돌아가 겨울을 나면서 새로운 봄이 오면 다시 시작될 농사를 위한 거름이 된다.


감히 확신컨데, 옥수수는 꿈을 이루었다고 뿌듯해하고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손에 하모니카처럼 들려 입 안 가득 달콤함 선사하면서 기분이 참 좋지 않을까. 버티길 잘했다고, 그 뜨거움을 다 받아내어 내 것으로 만들길 참 잘했다고. 가끔은 오늘의 하늘이 너무 뜨겁고 버거워 다 포기하고 드러눕고 싶어 지는 날이 오면, 그때 나는 옥수수를 기억할 것이다. 옥수수가 어떻게 여름을 견뎠는지, 그래서 얼마나 옥수수가 달콤해졌었는지.




빈 옥수숫대를 보니 올해의 농사가 끝인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다. 옥수숫대 옆에서 들깨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나에게는 심어야 할 한 판의 배추가 남아있다. 126개의 저 배추가 벌건 김장이 되는 날, 올해의 농사가 끝났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산골의 처서(處暑).

자, 오늘은 배추를 심자.

집 앞 계단에서 다소곳이 앉아 나를 기다리는 배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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