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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Nov 18. 2016

짚단 넘어가는 소리에 가슴 철렁해 본 적 있는가

박용래의 月暈(월훈)

月暈 (월훈)

박용래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뚝,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坑(갱)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木瓜(모과)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우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月暈(월훈).




어느 날인가, 집 앞 평상에 앉아 오래도록 해가 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실은 아주 잠깐이었겠지만 느껴지기에는 한 시간쯤은 된 것처럼 길었다. 

산골 마을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 도시의 일과가 다 끝나기도 전에 산골에서는 해가 진다. 


해가 지는 시간쯤이면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이 있었다. 그 집 노인은 작년에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노인이 죽어 그 집이 빈 집이 된 것이 나는 그렇게 아쉬웠다. 사람이 아쉬웠던 것은 당연하고, 더불어 저녁에 피어오르는 그 연기가 나는 계속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산에 해가 넘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산 그림자가 이내 어둠이 되어 내린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 깜깜해지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데, 나는 그날 집 앞 평상에 앉아 해가 지려할 때부터 어두워지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나둘씩 창문이 환해지고 따뜻해지길래 나도 불을 켜려고 집으로 들어왔다. 나도 저 창문들처럼 따뜻해지고 싶어서 말이다. 곧 달이 뜨고 무어라도 우는 그런 밤이 되었다. 밤은 산골 마을 창문에 불을 켜면 그제야 기웃기웃 찾아온다.


달밤에 시나브로 풀려 풀려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소리는 사실은 정말 작은 소리인데,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다른 모든 소리가 줄어들면 그 작은 소리, 짚단 넘어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할 때도 있다. 


멀리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도 잦아드는 늦가을의 밤. 나는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박용래의 시를 읽는다. 이 사람은 분명 산골마을에 살아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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