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 김지하
형님
김지하
희고 고운 실빗살
청포잎에 보실거릴 땐 오시구려
마누라 몰래 한바탕
비받이 양푼갓에 한바탕 벌여놓고
도도리장단 좋아 헛맹세랑 우라질 것
보릿대춤이나 춥시다요
시름 지친 잔주름살 환히 펴고요 형님
있는 놈만 논답디까
사람은 매한가지
도동동당동
우라질 것 놉시다요
지지리도 못생긴 가난뱅이 끼리끼리.
실빗살이 정확히 뭘까.
청포잎이 어떻게 생겼더라.
도도리장단은 어떤 박자로 치는 것일까.
보릿대춤은 어떤 모양으로 추는가.
짧은 시에 나는 질문이 많다.
허나 질문에 답은 다 몰라도 왠지 시가 그리는 그림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비 내리는 어느날, 마누라도 없는 그런 날 시인은 형님을 초청해 놓고 양푼갓을 엎어 놓고 도도리장단을 친다.
보릿대춤이나 추다가 큰 소리 뻥뻥치며 헛맹세도 하고.
아마도 그러려면 거나하게 취하게 해줄 탁주도 한 사발 있어야하리라.
묵은지에 탁주를 들이키며 장단 놓고 춤을 추며 괜히 있는 놈들 욕도 해 가며 한바탕 놀아제끼는 모습이 그려진다.
시인의 청은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언젠가 만나자는 기약없는 약속으로 스러졌을까.
어느 실빗살 보실거리는 날에 청하여 함께 놀자고 말할 형님이 있는 그가 행복해보인다.
뒤숭숭하고 마음 둘 곳 없는 시대, 이 차가운 밤에
시인의 이 소박한 바람이 꼭 이루어졌기를, 나는 자꾸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