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를 다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우개연필 Nov 26. 2016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사랑은 - 김남주

사랑은

김남주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볼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이 시를 보고 남녀 간의 절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떠올랐다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울까. 

시국이 이러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사랑은 둘 만의 사랑이 아니라 

'너와 나와 우리가' 함께 하는 사랑이라고 읽힌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서 하나의 빛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서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려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줄 아는 것이 사랑임을 생각한다. 

어쩌면 이 촛불들이 외치고 있는 희망과 평화와 정의의 나라는 그리 쉽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랑은 

가을을 끝낸 광화문에 서서 눈을 맞으면서도 

작은 것 하나를 꺼내 둘로 나누어 가질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한 별을 바라보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따라온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 아닐까.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는 마음이 없이는 천년을 두고 나무를 심을 수 없다. 

그리고 훗날, 이렇게 뼈를 갈아 심은 나무는 쉬이 흔들릴 리가 없다. 

볼모의 땅을 파헤쳐 오늘을 뼈처럼 갈아 재로 뿌리며 천년을 바라보며 나무를, 

한 그루의 나무를 심자. 

매거진의 이전글 도동동당동 우라질 것 놉시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