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 김남주
사랑은
김남주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볼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이 시를 보고 남녀 간의 절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떠올랐다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울까.
시국이 이러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사랑은 둘 만의 사랑이 아니라
'너와 나와 우리가' 함께 하는 사랑이라고 읽힌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서 하나의 빛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서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려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줄 아는 것이 사랑임을 생각한다.
어쩌면 이 촛불들이 외치고 있는 희망과 평화와 정의의 나라는 그리 쉽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랑은
가을을 끝낸 광화문에 서서 눈을 맞으면서도
작은 것 하나를 꺼내 둘로 나누어 가질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한 별을 바라보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따라온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 아닐까.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는 마음이 없이는 천년을 두고 나무를 심을 수 없다.
그리고 훗날, 이렇게 뼈를 갈아 심은 나무는 쉬이 흔들릴 리가 없다.
볼모의 땅을 파헤쳐 오늘을 뼈처럼 갈아 재로 뿌리며 천년을 바라보며 나무를,
한 그루의 나무를 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