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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Dec 07. 2016

가만히 내 반쪽 심장에 끓이는 더운물

金洙暎을 추모하는 저녁 미사곡 - 김영태

金洙暎을 추모하는 저녁 미사곡 

김영태 

六月 十六日(유월 십육일)은
그대의 祭日(제일)이다
花園(화원)에 가도 마음 달랠 꽃이 없어
나는 徒步(도보)로 그대, 무덤 곁으로 간다
무덤은 멀다 노을 아래로
노을을 머리에 이고
타박타박 駱駝(낙타)처럼 걸어간다
내가 그대에게 줄 것은
식지 않은 사랑뿐이라고
걸으면서 가만히 내 반쪽 심장에
끓이는 더운물뿐이라고
무덤에 도착하면 오빠 곁을 안 떠나는
누이에게 전하리라
말하지 말라고 그대가 눈짓을 보내면
나는 또 장승처럼 서 있다가
타박타박 산길을 내려오려고 한다
반쪽 심장에는 올 때마다
더 많이 더운물을
출렁거리면서
우리 마음이 오늘 저녁은 아무데나 가서
맞닿아 있어 서로 빈손을
크게 벌려놓지 않으려고 한다  




이 시를 쓴 시인은 김수영 시인을 개인적으로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나처럼 시집 속의 시인으로 알았을 뿐인 것일까. 만약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던 사이인데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시인의 제일(祭日)에 무덤까지 찾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열정인가. 나는 그저 연변을 지나는 길에 명동촌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터에 찾아가서 그의 시를 한번 읊어보는 것만으로도 윤동주 시인과 큰 교감을 나눈 양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존경하고 기리고 싶은 시인이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그의 시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과 삶까지도 좋아하게 된다면 더욱 그렇다. 나는 아직까지는 윤동주와 백석에 머물러 있다. 다른 시인들의 세상에도 발을 들여놓자고 생각해 보았으나 진지하지 못했는지, 그만 자꾸 잊어버리고 만다.

 

'걸으면서 가만히 내 반쪽 심장에 끓이는 더운물'이라는 표현이 너무 멋져서 오늘 나는 이 시를 맴돌고 있다. 갑자기 해부학 교과서에 나오는 심실과 심방 그림이 떠오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조금 덜 낭만적 하지만, 그 생리학적 현상마저도 이렇게 멋지게 그려놓다니 말이다.


이 감탄은 나의 반쪽 심장에 가만히 더운물이 끓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내 심장을 끓게 하는 일은 무엇이며, 그런 이는 누구인가. 

아니, 심장이 끓는 일이 요즘도 일어나고 있기는 한가. 


내 심장의 미지근함에 화들짝 놀라는 밤이다.  



PS. 

낙타(駱駝)가 한글이 아니라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였다는 사실을, 이 시를 읽으며 처음 알았다. 

한자를 자주 쓰는 시인들이 참 많다. 나는 지금 우리 시에서는 우리말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비천한 나의 한문 실력이 자꾸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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