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울 - 송찬호
임방울
송찬호
삶이 어찌 이다지도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용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유성기 음반 복각판을 틀어놓고,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옷을 지어 입었다는 그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들어보시게, 시절을 뛰어넘은 명창은 한 번 반드시 나타나는 법
우당탕 퉁탕 울대를 꺾으며 저 여울을 건너오는,
임방울, 소리 한가락으로 비단옷을 입은 늙은이
삶이 어찌 이다지도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 국창 임방울의 [쑥대머리]를 들으며 이 시를 다시 읽는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시를 읽었다. 갑자기 웬 명창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서.
그러다가 시의 제목이 '임방울'이기에 내가 모르는 무슨 방울이 있는가 하고 검색을 해 보았다.
생경한 단어가 또 나오는구나 하면서.
그랬더니 임방울은 무슨 방울이 아니고 사람 이름이었는 데다가 엄청 유명한 명창이었는지 그의 이름을 건 국악제가 따로 있기까지 하다.
아, 나의 이 무지(無知).
이 분은 1904년에 태어나 모진 세월을 다 살아내고 여전히 모진 세월이던 1961년에 광주에서 돌아가신 분으로
이 시를 읽지 않았다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들어볼 일이 없었을 이름이었지 싶은, 그런 이름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를 읽으니, '삶이 어찌 이다지도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하며 첫 행과 마지막행을 써 놓은 시인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다.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옷을 지어 입었다는 백 년 잉어 같은 소리꾼이라니..
실제로 이 분이 소리를 하시는 곳에 가서 어느 구석에라도 철퍼덕 앉아 그 비단옷을 한번 보고 싶어 진다.
나는 소리를 잘 모르지만, 언뜻언뜻 TV에 나오는 것을 보거나 어쩌다, 아주 어쩌다 가끔 공연장에서라도 보게 되면
그 소리라는 것은 분명 목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서 나오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저 평범한 목구멍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슴을 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점점 소리를 들을 일도 없어지고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일도 적어진다. 어렸을 적에는 TV에 가끔 나오기도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근 몇 년간 TV에서조차 볼 수 없어지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나마 시로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며 언뜻 떠오르는 몇몇 유명한 명창의 소리라도 몇 자락 찾아서 들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잊고 있던,
없어도 사는데 큰 지장 없다고 여기던 것들을 어디선가 문득 다시 만날 때,
그것들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영화 속 키딩 선생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시, 미(美), 낭만, 사랑이 삶의 목적이라던.
"Medicine, law, business, engineering, these are noble pursuits and necessary to sustain life. But poetry, beauty, romance, love, these are what we stay alive f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