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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Dec 27. 2016

궁금한 일들은 다 슬픈 일들입니다

궁금한 일 - 장석남

궁금한 일

- 박수근의 그림에서 

장석남 


인쇄한 박수근 화백 그림을 하나 사다가 걸어놓고는 물끄러미 그걸 치어다보면서 나는 그 그림의 제목을 여러 가지로 바꾸어보곤 하는데 원래 제목인 [강변]도 좋지만은 [할머니]라든가 [손주]라는 제목을 붙여보아도 가슴이 알알한 것이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가 술을 드시러 저녁 무렵 외출할 때에는 마당에 널린 빨래를 걷어다 개어놓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 빨래를 개는 손이 참 커다랐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장엄하기까지 한 것이어서 聖者(성자)의 그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멋쟁이이긴 멋쟁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또한 참으로 궁금한 것은 그 커다란 손등 위에서 같이 꼼지락거렸을 햇빛들이며는 그가 죽은 후에 그를 쫓아갔는가 아니면 이승에 아직 남아서 어느 그러한, 장엄한 손길 위에 다시 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마른 빨래를 개며 들었을지 모르는 뻐꾹새 소리 같은 것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궁금한 일들은 그러한 궁금한 일들입니다. 그가 가지고 갔을 가난이며 그리움 같은 것은 다 무엇이 되어 오는지...... 저녁이 되어 오는지...... 가을이 되어 오는지...... 궁금한 일들은 다 슬픈 일들입니다.  




먼저 시에 등장하는 박수근 화백의 [강변]을 찾아본다. 

두 개의 그림이 검색되는데 하나는 유화로 그린 잿빛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크레파스로 그린 알록달록한 그림이다. 

강변, 캔버스에 유채, 1964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강변, 종이에 크레파스, 1950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둘 다 참 좋지만은 아무래도 나는 박수근의 잿빛 유화가 더 좋다. 

시인은 어느 그림을 사다가 걸어두고 치어다보고 있었던 것일까. 

일단 아이가 등장하는 그림은 유화이니, 아마도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가슴이 알알하다는 말이 참 좋다. 

그 알알한 가슴으로 떠올린 한 장면도 참 좋다. 

박수근 화백이 술을 한잔 하러 나가기 전 마당에 있는 빨래를 개곤 했다는 그 장면 말이다. 


거기까지는 시인도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다음 연에서 시인의 이야기가 추가된다. 

손등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햇빛, 뻐꾹새 소리.

그러한 것들은 모두 박수근 화백을 따라갔는가 아니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궁금한 마음이 

가난과 그리움, 저녁과 가을로 이어진다. 

궁금한 일들은 다 슬픈 일들이라며. 


인쇄한 박수근 화백의 그림 하나에서 시작하여 화백의 인생에 잠시 들어가 보고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함께 궁금하고 함께 슬퍼지기도 하는 시로구나.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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