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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Feb 03. 2017

더 단단하게 자라고 더 넓게 품을 수 있기를

나무에 깃들여 - 정현종

나무에 깃들여

정현종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시를 읽고,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내가 깃들여 사는 나무들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집 앞마당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있다. 

한 나무는 밤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느티나무이다. 

원래는 세 그루였는데 집과 너무 가까운 곳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 것이 위험하다며 재작년인가 베어버렸다. 


그것들이 떨어뜨리는 낙엽에 한숨을 푹푹 쉬다가도 

봄에 까슬까슬한 새 잎이 돋아오를 때 나에게 선사하는 기쁨이 얼마이며, 

여름 내내 마당에 그늘을 만들어주고 바람을 보아주는 공이 얼마인가를 생각하면,

그리고 가을에 굵은 밤을 지붕 위로 툭툭 던져주며 람쥐람쥐 다람쥐와 나를 살찌우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이 낙엽 내가 다 쓸어줄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무가 단지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밤을 주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무가 하나도 없는 집 마당을 떠올려보면 마치 형무소 같기도 한 기분이 들 것 같아 몸서리를 치게 된다. 

아마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나무에 깃들여 사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 여기저기 눈이 잔뜩 쌓여 있지만 내일이면 입춘이라 한다.

내일부터는 봄이다 생각하면 오늘이 겨울의 마지막 날인 셈이다.

겨울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크고 작은 일에 웃다가 부르르 끓다가 하는 이 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언제나 누군가가 와서 깃들일 나무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뾰로통하고 

제발 내 일에 간섭하지 않았으면 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가 

과연 누군가 와서 삶을 기대고 지친 마음을 누일 수 있는 나무 그늘을 내어줄 수 있는 때가, 그런 때가 올까. 


더 단단하게 자라고 더 넓게 품을 수 있는 2017년이 되기를. 

일희일비하지 않고 꿋꿋할 수 있는 2017년이 되기를. 

조금 더 어른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내가 깃들여사는 집 앞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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