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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Mar 03. 2017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독서 모임을 시작하고 첫 순서로 내가 첫 번째 책을 고르게 되었다. 며칠을 고심한 끝에 고른 책이 바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필명으로 로맹 가리에게 두 번째 콩쿠르상을 안겨준 이름이다. 그가 죽을 때까지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신예 에밀 아자르에 열광하는 동시에 로맹 가리의 재능은 끝이 났다고 평하던 많은 사람들은 이 진실 앞에 얼마나 얼굴을 붉혔을까.


책을 열 페이지쯤 읽었을 때, 나는 첫 순서로 이 책을 선택한 것을 살짝 후회했다. 너무나 사랑하는 것은 될 수 있는 한 아껴두었어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책을 읽으며 주인공 모모가 사람들과 생에 대한 앙큼하면서도 여지없이 옳은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이 책은 본래 내가 골라 사게 된 책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책이었다. 그것도 본인이 읽으며 연필로 줄을 그어놓은 책을 나에게 준 것이었다. 나는 그 연필 자국을 보면서 책을 선물한 사람을 생각했다. 그의 연필 자국과 내 노란 색연필 자국이 만나는 곳에서 특히 그를 생각했다.      




주인공 모모는 열 살 남짓 된 아랍인 남자아이다. 모모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와 여러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모모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은 모두 창녀의 자식들로 로자 아줌마가 맡아 길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 가장 오래 함께 살았고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아 이제는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돌봐주기도 한다. 모모의 동네 벨빌에는 유태인과 아랍인,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양탄자 장수 하밀 할아버지와 포주 은다 아메다씨, 의사 카츠 선생님,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왈룸바 씨 일행, 여장남자 롤라 아줌마 등 이웃들이 살고 있다. 로자 아줌마는 폴란드에서부터 몸을 팔기 시작해서 독일 유태인 수용소에서 나온 후에도 파리와 모로코와 알제리 등에서 잘 나가는 창녀였지만 이제는 육중한 몸에 온갖 병을 달고 살며 기력이 쇠해져 있었다. 아줌마는 뇌혈증이 안 좋아지면 제정신이 아닐 때가 종종 있는데 모모는 그럴 때 종종 거리로 나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성우로 일하고 있는 상냥한 나딘 아줌마를 만나기도 하고 하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돌아왔을 때, 십일 년 전 모모를 맡기고 떠난 아버지가 아이를 돌려달라며 로자 아줌마를 찾아왔다. 하지만 로자 아줌마와 모모는 이런저런 말로 둘러대며 모모를 내어주지 않았고, 모모의 아버지 유세프 카디르는 그 과정에서 말다툼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이 사건을 통해 모모는 엄마의 이름이 아이샤라는 것도 아버지가 엄마를 죽이고 정신병원에 오래 감금되어 있었다는 것도, 자기가 사실은 열 살이 아니라 열네 살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 일 이후에 로자 아줌마의 건강상태는 꾸준히 악화되었고 의사인 카츠 선생님은 병원에 가야 한다고 설득하지만 로자 아줌마는 병원에서는 자기를 죽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괴롭힐 것이라며 거부한다. 롤라 아줌마와 왈룸바 씨 일행 등 이웃들이 종종 와서 로자 아줌마와 모모를 돌봐주었지만 로자 아줌마는 호전되지 않고 점점 나빠지기만 했고 결국 모모는 사람들에게 로자 아줌마가 이스라엘 친척 집으로 갔다고 거짓말을 하고 로자 아줌마가 병원에 끌려가지 않도록 로자 아줌마를 지하방에 은밀히 옮겨 놓는다. 결국 로자 아줌마는 그 지하방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고 모모는 3주 동안 그 곁을 지키다가 지독한 냄새 때문에 알아차린 이웃들과 경찰에 의해 발견되어 나딘 아줌마의 별장에 머물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친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한동안 마음이 울먹울먹 하는데도 눈물은 나지 않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자기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모모의 진실함에 언제나 압도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로자 아줌마의 죽음마저도 끌어안고 돌봐주려 하는 모모의 변하지 않는 사랑이 슬프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때문인 것 같다.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또 한 가지 주목한 것은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이웃들이었다. 모모의 사랑만큼이나 나를 따뜻하게 했던 것은 이 사람들의 돌봄이었다. 의사인 카디르 씨를 제외하면 대부분 하나같이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주변인들, 그러니까 창녀와 포주, 여장남자, 흑인, 아랍인들이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서로를 향한 돌봄은 때로 엉뚱하더라도 한결같고 희생적이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급급한 인생들일 텐데도 자기의 삶을 떼어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와 모모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모습은 내가 배운 성경의 가르침에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 우리네 일상에서는 이제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그래서 오히려 모모의 사랑보다 더 소설 속의 이야기 같고 이루어질 수 없는 모습이 아닌가 여겨지기까지 하는 모습이 바로 이웃들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그 이웃들 중에서도 모모는 아랍인 하밀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소설 초입에 모모와 할아버지의 이런 대화가 등장한다.


나는 로자 아줌마 생각이 나서, 잠시 망설이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할아버지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몸에 좋다는 박하차만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중략)
“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p. 12-13


소설의 도입부에 나타난 이 장면에서 하밀 할아버지는 모모에게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다고 가르쳐주는 듯싶다. 하지만 모모는 할아버지의 진짜 가르침을 간파하고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하밀 할아버지와 다시 이런 대화를 나눈다.   

       

“하밀 할아버지, 제 말을 못 들으셨나 봐요.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의 얼굴이 속에서부터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그래, 정말이란다. 나도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었지. 그래, 네 말이 맞다.”     

p. 300


나는 이 두 대화가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에 놓여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를 이 대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 말이다. 모모는 마지막에 하밀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기억하면서 그의 말이 정말 맞았음을 고백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마지막 말로 전체 이야기를 닫는다.



이 소설은 나에게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반복해서 그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소설로 여겨진다. 사람은 사람 없이 살 수 없다는 주제는 하밀 할아버지와의 대화뿐 아니라 이웃들의 돌봄을 통해, 모모의 경험을 통해, 로자 아줌마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주된다. 그와 동시에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어떤지,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반복해서 묻게 한다. 


팍팍하고 메마른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특히 사랑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이가 혹시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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