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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Aug 16. 2017

기다림과 때와 옥수수

늦여름 옥수수를 따서 쪄 먹으며 드는 생각

옥수수의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어쩌다 보니 옥수수 농사를 내리 5년째 짓고 있지만 그건 내가 옥수수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옥수수를 심으면 손이 별로 안 가기 때문이다. 옥수수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그늘이 생겨 고랑 사이에 잡초도 그리 많이 자라지 않아서 좋다. 물론 잡초가 어느 정도는 자라지만 그건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라서 나는 늘 '제초제는 나쁘고 김을 메는 것은 힘들지'라며 그냥 둔다. 그러면 옥수수는 잡초와 함께 자란다. 그러면서도 옥수수는 2 토새기('개' '자루'로 번역될 수 있을 이곳 방언인 듯)씩 키워낸다. 비가 잘 오고 거름이 적절할 때는 이 2개 모두 잘 자라서 먹을만하게, 그러니까 내 손목 굵기 이상은 되도록 자란다. 그러면 한 대의 옥수수에서 2 토새기를 수확할 수 있다. 올해는 봄에 가물어서였는지 2개가 나오기는 했지만 한 개만 먹을만하게 자라고 나머지 하나는 잘 여물지 않았다. 화학비료를 주지 않았더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더니 옥수수들이 게을러진 것일 수도 있다. 이러니 농부들이 화학비료를 주는 것이구나 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2개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온갖 수확량을 올려준다는 화학물질들이 시장에 즐비하다. 비료를 주지 않은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아침에 비가 내리는데도 우산을 받쳐 들고나가서 옥수수를 열 토새기쯤 따왔다. 그리고 껍질을 싹 벗겨낸다. 옥수수를 까다 보면 각종 벌레들을 조우한다. 옥수수를 먹기 위해 숨어 있던 초록색 애벌레부터 밭에서 따라 들어온 방귀벌레 같은 것들이다. 애벌레도 그렇지만 방귀벌레는 죽여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이 녀석이 불쾌한 냄새로 복수를 하기 때문이다. 그저 껍질과 함께 다시 밭으로 돌려보내면 그만이다. 그럼 다시 어디론가 자기 있을 곳을 찾아 길을 떠나겠지. 


여러 블로그에 보면 옥수수의 속껍질을 몇 장씩 남겨두어서 미농지에 싸인 것처럼 옥수수를 삶으라고 되어 있다. 그렇게 하면 더 맛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따 놓은 지 며칠씩 된 옥수수를 먹을 수밖에 없는 도시에서 그나마 맛을 더하기 위해 하는 일이다. 방금 따 온 옥수수에는 그런 것이 필요 없다. 누구는 설탕을 넣기도 하고 뉴수가를 넣기도 하고 소금을 넣는 사람도 있다지만 여기선 다 필요 없다. 그냥 옥수수 자체의 단맛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서 옥수수를 압력솥에 넣고 물을 반쯤 채운 뒤 센 불에 올린다. 


옥수수를 담은 압력솥의 추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세차게 흔들리도록 3~4분 여유를 준 뒤 중간 불로 바꿔 타이머를 20분에 맞춘다. 전기레인지는 타이머를 맞출 수 있다는 점이 참 맘에 든다. 가스레인지도 그런 것이 나왔겠지만 아직 써본 적은 없다. 추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온 집안에 옥수수 냄새가 가득 찬다. 구수함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 향은 보리차를 끓일 때의 향과도 밥이 될 때의 향과도 다른 구수함이다. 이 각자의 냄새를 구수함이라는 표현으로 묶자니 좀 미안하기까지 할 만큼 다르다. 사실 나는 다 익은 옥수수를 먹는 것보다 옥수수 찔 때 나는 이 향이 좋아서 옥수수를 삶는다. 따뜻하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향, 너무도 평범하지만 금방이라도 잠이 들것 같이 아련한 그 향. 


20분을 알리는 타이머가 울리고 전기레인지가 꺼지고 나면 그 자리에서 뜸을 들인다. 추가 계속 돌아가지만 그대로 두고 스스로 열을 식히고 마음을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옥수수에는 더 깊은 맛이 돌고 속은 야들야들해진다. 기다림은 옥수수의 인생에 있어 불가분의 관계다. 옥수수는 모종으로 심겨 내내 비를 기다리고 햇빛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리며 자기를 키워냈다. 그리고 주인이 자기를 수확해주기를, 저 까마귀들이 습격을 해 와서 흉하게 뜯어 먹히기 전에 자기를 수확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뜨거운 압력솥 안에서도 그는 내내 기다린다. 추가 돌기를 기다리고 20분 타이머가 울리기를 기다리고 그리고 마침내 이 온도와 압력이 스스로 빠지기를 기다린다. 옥수수는 기다리는 동안 빗방울을 머금고 햇빛을 채우고 바람의 향을 자기 안에 가두었다. 그리고 지금 머금었던 것과 채워놓았던 것과 가두어두었던 것을 조금씩 풀어놓으며 맛을 이루고 있는 참이다. 그러니 나도 기다려야 한다. 옥수수의 시간을, 그의 마지막 여정을, 그의 가장 찬란한 기다림을. 추가 돌아가는 소리가 잦아들고 압력솥의 압력이 모두 빠져나가 비로소 뚜껑을 열 수 있는 순간이 되었을 때가 찾아올 때까지, 그 알맞은 시간이 마침내 올 때까지.


모두가 잠잠해지고 옥수수 향만 가득한 부엌에서 나는 뚜껑을 열고 다시 옥수수를 만난다. 옥수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순간만큼 가장 먹고 싶은 것은 바로 옥수수가 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찐 옥수수. 한 김 나가도록 넓은 그릇에 옮겨 담고 또 잠깐을 기다리면 드디어 옥수수를 맛볼 수 있다. 한 입 베어 물면 즙이 화르륵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몸이 따뜻해진다. 한 알갱이씩 떼어먹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는 경험은 좀처럼 할 수 없다. 한입 크게 물고 빨아들이면 따뜻한 알갱이와 즙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팔이 따뜻해지고 뱃속으로 들어가면서 발에도 온기를 전한다. 무슨 신비의 명약이냐 싶겠지만, 글쎄 이렇게 옥수수를 먹어보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이다.


먹어 본 사람만 아는 그 맛. 김이 뽀얗게 서려 자체 뽀샵처리가 된 갓 쪄낸 옥수수.


옥수수의 기다림의 시간도 지나고 나의 기다림의 시간도 지나 우리의 시간이 드디어 만났을 때 나는 옥수수를 먹고 따뜻해질 수 있다. 섣불리 욕심을 내어서도 지나치게 늦장을 부려서도 안된다. 옥수수와 내가 만나는 딱 좋은 시간, 바로 그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말고 그 순간을 충실히 누려야 한다. 그 절호의 순간을 기억하려 옥수수를 냉동했다가 겨울에 먹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 시간을 얼려보아도 이미 그것은 오늘 누리는 늦여름 갓 딴 옥수수의 그 시간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때가 있고, 옥수수에게도 때가 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를 수도 늦을 수도 있지만 모두 자기만의 때가 있다. 그때를 알고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축복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때를 그냥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비가 쏟아지는 광복절의 아침, 나는 옥수수를 따서 삶으면서 그리고 한 입 베어 물면서 때를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때인가, 지금은 나에게 어떤 시간인가를 생각한다. 날마다 돌아오는 이 절호의 순간을 나는 얼마나 알아차리며 살아내고 있는지, 나는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내고 있는지. 옥수수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기다림과 때에 대해 묻고는 따뜻함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정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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