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추억을 담아 만든 가죽부각 한 장

자연이 말을 걸어오는 계절

by 찹쌀꽃


시골에서의 삶은 늘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일상이다.

우리 집 뒤뜰에도 가죽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봄이면 연둣빛 어린순들이 올라오지만, 나는 늘 모른 척 지나쳐왔다.

가죽나물을 좋아하지 않아서다.


어린 시절의 기억


어릴 적 시골에서 친구들은 봄만 되면 가죽순을 꺾어

장독대 고추장 단지 뚜껑을 열어놓고 맛있게 찍어 먹곤 했다.

장독대 앞에 모여 깔깔 웃으며 손에 들고 오물오물 씹던 친구들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 모습이 부러워 나도 몇 번 따라 해보려 했지만,

한 입 넣자마자 코끝으로 밀려오는 그 강하고 독특한 향에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그 뒤로 가죽나물은 내 삶에서 조용히 멀어져 갔다.


남편의 추억


얼마 전, 굿뜨래 농업대학에서 현장견학을 다녀왔다.

‘만석이네 농장’에서 가죽순을 조금 얻어왔다.

그저 다른 사람들 챙겨주는 마음으로 받아왔을 뿐,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그걸 보더니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데쳐서 무침해줄래?”

“... 음, 그 향 알잖아.”

“그럼, 가죽부각 만들어줘. 어릴 적에 어머니가 종종 해주셨거든.”


결혼하고 살아오면서 가죽나물 반찬을 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싫어하니 남편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꺼내놓은 어린 시절의 추억 앞에서

나도 모르게 ‘그래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죽부각을 만드는 시간


가죽부각을 만들어본 적은 없었다.

뒤뜰에서 연한 가죽순을 조심스럽게 꺾어 오고,

블로그 검색을 열 번도 넘게 반복하며

이 사람 저 사람의 조리법을 모았다.

가죽향을 마주할 때마다 코끝이 찡했지만,

남편의 추억을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다.


마침 집에는 내가 찹쌀을 발효해 곱게 빻아둔 찹쌀가루가 있었다.

찹쌀풀을 쑤고, 집에서 직접 담근 고추장을 꺼내와

가죽순 한 장 한 장에 정성을 담아 발랐다.

부엌 가득 퍼지는 그 향 속에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나를 느꼈다.


추억이 담긴 한 입


뜨거운 초여름 햇살 아래 조심스럽게 말려낸 가죽부각.

바삭하게 잘 마른 부각을 한 입 베어 문 남편이 환하게 웃었다.


“이 맛이야. 어릴 때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그 맛이네.”


그 한마디에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

비록 나는 여전히 가죽나물 향을 좋아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추억을 다시 꺼내어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부각은 충분히 값졌다.


그 향에 물들어 가는 시간


살다 보면 이렇게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에서도

누군가의 따뜻한 기억을 꺼내어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나 역시 조금은 그 향에 물들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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