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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Apr 22. 2021

창업 아이템 발견, 그 후?

사심은 가장 강력한 동기

2018년 어느 여름날 분당 정자역 근처의 별다방 2층, 지금도 그 날이 정확하게 기억난다. 불현듯 전기에 감전된 듯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 나만의 창업 아이템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평일이면 늘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단톡방이 있다. 예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동생들로 각자 다른 회사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내내 친분을 이어오고 있었다. 서로 개성이 달랐지만 우리의 공통점은 하나! 얕거나 깊게 덕질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날도 다름없이 정자역 별다방에 자리를 잡고 취업 사이트를 살피고 있었다. 동시에 단톡방에서는 동생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주제는 회사 뒷담화, 쇼핑, 잡다한 신변잡기에서 어느새 덕질로 바뀌었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나는 대한민국 대표 락커 김경호 님의 팬이다! 지금은 코로나19와 여러 상황들로 휴덕 중이지만 몇 년 동안 전국 콘서트, 행사, 방송, 해외 공연을 가리지 않고 그분이 가시는 곳엔 늘 따라가서 응원할 만큼 덕심이 불타올랐다.

동생들은 각각 에픽하이, 아이콘의 팬이었고 우리는 각자의 스타일대로 응원하고 있었다.

"혜나님, 주말에 콘서트는 잘 다녀오셨어요?"

질문 떡밥이 떨어지면 이때부터 이야기 꽃을 펼쳤다. IT 회사의 플랫폼 사업/기획자답게 우리의 대화는 가볍게 시작해서 꽤 심도 있는 쪽으로 범위를 넓혀나갔다.

"입구 옆에 화환이 예뻐요! 이런 화환은 팬들이 모두 돈을 모아서 신청하는 거죠?"

"맞아요. 다른 팬덤은 잘 모르겠지만.. 총대가 공지를 띄우면 참여하고 싶은 팬은 총대 계좌에 입금을 해요."

"이런 디지털 시대에 참 아날로그 한 방식이잖아요. 이걸 플랫폼으로 만들면 참 편할 텐데."

"....오?!!!!!"


몇만 볼트의 전기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렬한 감각을 경험했다. 별다방에서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고 머릿속에선 수만 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래, 팬들만의 플랫폼을 만드는 거야. 어차피 팬들의 세계와 덕질에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은 플랫폼화 시키기도 힘들 거고. 팬들이 모든 활동을 이곳에서 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지원하면 어떨까?!'


이렇게 첫 번째 창업 아이템을 만났다. 그동안 쌓아둔 IT 경험이 이렇게나 고마울 수가 없다. 마치 이때를 위해 과거가 존재했던 것처럼 나의 점들이 모두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온갖 상상이 시작되었다. 플랫폼을 성공시켜서 성(공한) 덕(후)로서 그분과 인터뷰를 하는 등 사심을 동력삼아 내가 이 일을 해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날부터 폭풍처럼 자료검색에 착수했다. 아이템을 찾았으니 사업계획서를 쓰고 피칭을 해서 투자금을 확보해보자! 이후 석 달 동안 나는 미친 듯이 창업에 매달렸다. 스타트업 창업에 대한 모든 내용을 탐색하면서 대충 얼개가 잡혔다. 사업기획서도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모든 조사를 직접 하면서 한 땀 한 땀 작성해나갔다.

기술보증기금 벤처창업교실에 참여해서 28시간의 과정을 수료했고, 창업을 준비하며 비용절감을 위해 살고 있던 오피스텔 집을 정리하고 사촌언니네서 얹혀 살았다. 마침, 덕질의 시조새(!) 사촌언니 의견이 필요하기도 했다.


플랫폼 이름은 '모두의 꽃길'로 정했다. 친분이 있던 개발자도 사업성이 있는 것 같다며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기획은 내가 직접 하면 되었지만 외부에서 지원사격해 줄 사람이 절실했다. 슬프게도 도움을 요청할만한 사람은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재직 중에 여러 직군의 사람들과 친해두는 건데!!


개발자 두 분과 매주 커피숍에서 만나 진행상황을 공유했다. 머리를 맞대고 수익모델을 얘기하던 중에 가장 커다란 문제를 발견했다.

"수익이 생각보다 너무 적은데요? 인건비 나가면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역시, 문제는 돈이다! 이걸로는 직원 두세명 겨우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이 전부였다. 투자 유치가 절실한데 수익모델이 변변치 않으면 어느 투자자가 돈을 맡길 것인가.


회의를 중단하고 각자 아이디어를 생각한 뒤 다시 모이기로 했다. 나는 이 플랫폼의 본질과 핵심에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1주, 2주, 3주가 지나면서 숨은 인디음악가들로 범위를 넓히며 돈이 될 지점을 찾아다녔다. 이들의 생태계에서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게 뭘까. 소속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블록체인처럼 풀어헤쳐서 역할 수행을 분산시키도록 하고 싶었다.  

사업계획서의 커다란 구멍을 메우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한참 고민하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와.. 이게 얼마만이죠? 혜나님 잘 지내셨어요? 여기 기획자를 구하는데 혜나님 생각이 나서요."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디자이너였다. 취업할 생각은 없다고 전하며 최근에 이사했다는 근황을 전했다.

"아 그러시구나. 여기 대표가 여자분이거든요. 업종은 광고 마케팅인데... @#$%^&"

여자 대표? 광고 마케팅?! 순간, 심봉사가 눈을 뜨듯 내 귀가 번쩍 트였다.


광고 마케팅 쪽이니 창업을 위해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거란 직감이 스쳤다. 게다가 여자 대표니까 그분을 곁에서 관찰하고 배우면 분명 도움이 되리라! 그날로 이력서를 냈고 그렇게 1년을 조금 넘게 다녔다.


그곳은 내 마지막 회사가 되었으며 나는 지금 또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부록. 궁금해할지 모를 독자들을 위하여

Q. “그래서 지금은 뭘 하고 계신건가요?”


A.

브런치에 천천히 스토리를 풀어나가겠지만,

얼마 전에 온라인 쇼핑몰을 개시했어요.

몇 달 내로 개인사업자 등록도 진행할 계획이고요.

난생처음으로 상표권도 신청해서 출원 중에 있습니다. (세상일은 참 알 수 없죠?!)

구상했던 플랫폼은 잠시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어요.

때가 되면 세상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 매우 진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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