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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Jun 17. 2021

나의 롤모델, 그를 존경하는 이유

미친 듯이 심플한 스티브 잡스

Q. 스티브 잡스를 왜 좋아하세요?

A. (....?!) 단순함의 최고를 추구했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나눴던 대화 중 한 꼭지를 소환했다. 내 롤모델은 언제부턴가 스티브 잡스다. 잡스만큼 혁신으로 세상을 뒤바꾼 인물이 흔치 않고 애플보다 더 나를 현혹시킨 브랜드도 없었다. 왜 그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유가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그걸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피쳐폰을 졸업하고 스마트폰에 입문한 순간부터 3gs, 4s, 5s, 6s, 11에 이르기까지 오직 아이폰 한길을 걸었다. 아이튠즈 동기화를 하다가 데이터를 싹 날려도 봤고, 윈도우와 호환이 안돼서 투덜거렸지만 그 순간에도 iOS를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그땐 애플과 잡스에 대한 존경이라기보다, 애플의 극도로 단순하고 매혹적인 디자인 덕분이었다.


스마트폰의 초창기 시절, 아이폰은 쓰기 어렵다는 일부 의견 속에서 아이폰 유저들은 우리만의 동질감 비슷한 것이 있었다. 샤넬, 루이뷔통 명품백을 들고 나의 위상을 과시하고 싶은 것처럼 애플 제품은 내 스마트 라이프 성향을 드러내기 좋은 도구였다. 


애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건 맥북을 쓰면서부터다. 오래 써온 윈도우가 익숙했지만 항상 맥북을 동경했다. 개발자로 일하던 시절,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맥북을 지원해주었는데 잘 쓰지 못하면서도 맥북을 받겠다고 손을 들었다. 앞면에 스티커를 여러 개 붙이며 장식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때도 나는 장식보다 애플의 심플한 디자인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정작 이 멋진 맥북을 잘 쓸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키보드 체계는 윈도우와 비슷한 듯하며 달랐고, 마치 예쁘지만 도도하고 시크한 여자를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극복이 힘들 거란 생각에 부트캠프를 사용해서 맥에 윈도우를 설치하고 듀얼로 썼다. 도도하고 시크한 그녀에게 안 어울리는 옷을 입히고 우스꽝스러운 펌을 시킨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당장 삭제해버렸지만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그림의 떡으로 남아있었다.


몇 년 후, 전원이 맥OS을 쓰는 회사에 입사했다. 익숙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시간이 갈수록 맥 사용이 점점 편해지는 걸 느꼈다. 군더더기 없는 기능에 액티브X 오류란 먼 나라 얘기가 된 시스템은 그야말로 천국!! 애플 사용자의 자긍심이 더해지고 나의 스마트 라이프도 한 껏 넓어졌다. 어느덧 맥OS를 쓴 지 햇수로 7년 차, 지금까지 윈도우가 없어도 잘 살고 있다. 


휴가를 내고 아침부터 애플 매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폰 4s 사전 예약자로서 출시 첫날 구매하려고 줄을 서서 대기했다. 영롱한 화이트 색상의 제품을 보자마자 0.1초 만에 마음을 뺏겼다. 내 지문이 자국을 남길까 걱정하면서 모서리를 겨우 잡아 액정필름을 붙이고 투명 케이스를 끼웠다. 안드로이드 폰으로 갈아탈 필요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느껴지지 않는다. 종종 업데이트를 하다가 배터리에 문제가 생긴 적도 있었고 한국 사용자를 호구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날 선 비판도 있지만, 이미 마음을 뺏긴 자에겐 들리지 않는다.


한낱 기계가 이토록 유혹적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고 깔끔한 외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다른 시스템과 호환을 이루지 않는 도도함, 그들만의 성역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한 없는 자유를 누리도록 허락하는 관대함. 제품들은 애플이란 생태계 안에서 밀당의 고수처럼 적절한 태도를 취한다. 이런 물건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인 사람, 스티브 잡스다. 


잡스의 생전에는 막상 큰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다음 제품은 어떤 혁신이 기다리고 있을까? 빨리 다음 버전을 내놓아라! 가 전부였다. 막연히 그가 하는 것은 모두 옳다!라는 무한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날, 회사에서 하루 종일 그의 기사를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잡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지,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날 밤에도 잠이 안와서 블로그에 글을 끄적였다.


스티브 잡스의 두꺼운 자서전을 두 번 정독했고 잡스를 다룬 영화도 두 번씩 봤다. 사업가로서의 모습 이외에도 일상에서 엿볼 수 있는 그 사람 자체가 궁금했다. 양 부모 아래에서 자랐으며 아버지는 그의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자유로운 히피 문화와 선불교는 그의 사고를 지배했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언제나 직진이었다. 그가 생애 처음으로 구매한 차량 모델, 브랜드명을 애플로 짓게 된 배경 등 소소한 에피소드나 한 줄의 언급 마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쨌든 애플은 곧 스티브 잡스였고 그는 완전연소하는 삶을 살았다.


책을 덮으며 이 뒷 이야기를 더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며왔다. 내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어도 그를 만나러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고, 잠시나마 동시대에 살았다는 사실에 더없이 감사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고 믿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다. '오늘 너무 피곤한데, 내일로 미룰까?' 싶다가도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면 나의 휴식은 욕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친 듯이 심플. 잡스는 '심플'을 애플의 모든 면에 적용했다. 그의 괴팍한 성질조차 애플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이제야 감이 조금 온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소신으로 밀어붙이며 결국 이루고야 마는 사람. 나는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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