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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Aug 03. 2021

여행의 설레임이란

유계획과 무계획의 간극

벌써 여름의 한가운데에 접어들었다. 밖은 가마솥 찜통인데 실내 커피숍은 찬 공기가 가득 들어차있다. 동남아로 여행갔을 때 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훅 밀려들던 기억이 난다. 함께 한 사촌 언니가 연신 땀을 닦으며 캐리어를 힘겹게 끌었지만 우리는 여행의 설레임으로 들떠있었다.


'일상에서도 여행의 설레임이 가득하기를.'

오래 전 회사 동료에게 기념카드를 선물하면서 그 안에 이렇게 메시지를 적었다. 그는 여행을 좋아해서 분기마다 훌쩍 떠나곤 했다. 모니터에 구글맵을 띄워놓고 이번엔 어디로 떠날지 검색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반면에 나에게 여행이란 설레임보다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낯선 환경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란 걱정을 남몰래 하고 있었으니까. 


2014. 12. 17. 남프랑스의 니스 해변


혼자 가던 함께 하던 여행은 평소의 안정을 깨는 일이다. 덕분에 여행 계획은 꼼꼼히 세우게 되었다. 또, 여행을 가면 많은 한국인이 그렇듯 알차게 뽕을 빼고 와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패키지 여행처럼 새벽부터 발도장만 찍고 이동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은 늘 분주했다. 멋진 곳에서 맛있는 걸 먹어도 그 다음 일정에 신경썼다. 내가 나만의 패키지를 짜고 일정대로 이동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걸 깨닫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돈을 쓰면서 떠나는 여행이니까 그만큼 알차게 누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명소는 꼭 가봐야 하고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는 건 기본이다. 이곳에서 뭘 했는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사진도 찍고 SNS에 열심히 올린다. 언젠가부터 기록은 여행의 또 다른 이름이 된 것 같다. 


한 번은 머리를 비우며 제대로 쉬고 싶어서 무계획으로 제주 여행을 떠났다. 프로계획러가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해도 되는지 반나절 내내 불안해하며 카페에 앉아있다가 결국 다음 날의 계획을 짰다. 다음 날 열심히 하루를 소비하고 와서 또 제대로 쉬지 않았음을 한탄했다. ㅋㅋ 


결국 여행의 설레임은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떠나기 직전까지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그렇다면 꼼꼼하게 계획을 짰던 것도 이유가 다 있었다. 여행지의 정보를 알아보고 계획을 짜면서 설레고 행복했던 거겠지. 사전에 낯선 곳의 사진을 보고 설레임을 미리 느껴버린 바람에 부작용도 있었다. 나홀로 프랑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유람선 바토무슈의 승강장을 못찾을까봐 길목과 이정표를 이미지 캡쳐까지 하며 표시해두었는데, 막상 그곳의 길이 너무 익숙해서 원래 알던 곳 같은 시시한 느낌이랄까?!


유계획과 무계획의 간극을 좁혀가며 조금씩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계획을 짜더라도 하루에 한 가지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이는 것. 이 단순하고 쉬운 걸 제대로 지키기까지 참 오래 걸린 것 같다. 혼자하는 여행은 모든 걸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어서 편하다. 언제든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꽤 큰 장점이다. 함께하는 여행은 동행자에 따라 생각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는데 그런 것들이 모여 추억을 이룬다. 음식을 주문할 때야말로 함께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무더위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내 지난 여행들을 떠올려 본다. 극복할 대상에서 즐기는 대상으로 바뀐 뒤 드는 생각은 '다 괜찮다!' 라는 것. 하루종일 호텔방에 앉아 룸서비스를 받아도 괜찮고, 바삐 돌아다녀서 에너지가 방전이 되더라도 괜찮다. 늘어지면서 혹은 움직이면서 내 마음이 중심을 잡도록 놔두면 된다. 극단에 치우치는 것들은 언젠가 나만의 무게중심을 잡도록 되어있을테니까.


2014.12.24.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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