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차이는 가치관의 차이
불편한 게 익숙해지면 편한 게 낯설어져요.
최근에 정회도 타로 마스터님의 온라인 타로카드 수업을 듣고 있다. 마이너 완드 카드를 설명하시는 도중에 나온 이 말이 내 귀를 붙잡았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쳐서 잠시 영상을 중지하고 문장을 메모해두었다.
우리는 얼마나 불편한 것들에 익숙해져 있을까? 불편한 건 무조건 나쁘고 편한 게 전부 좋은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편한 걸 취할 수 있음에도 어떤 이유로 불편한 걸 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인간관계, 사회생활, 개인적인 성취 등 삶의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배려나 희생,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 등 선한 의도를 품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분명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좋은 의도로 시작하고 감수해 온 불편한 행동이 나 자신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주려고 혹은 상대방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내가 원하는 행동이나 활동을 하지 않았을 때다. 사소하게는 저녁 메뉴를 양보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크게는 나와 다른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까지 얘기할 수 있다.
먹고 싶은 메뉴를 양보하는 건 쉽다. 예를 들어, 나는 산낙지를 못 먹는데 상대방이 아주 좋아하면 산낙지 식당에 함께 갈 수도 있다. 나는 식당에서 파는 다른 메뉴를 먹으면 되니까. 물론 메뉴에 따라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래도 몇 번쯤은 상대의 취향을 맞춰주려고 노력할 테고 상대방은 나의 배려에 고마워할 것이다.
여기서 가치관으로 범위가 넓어지면 다른 종류의 문제가 된다. 간단하게 성격차이라고도 하지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예로, 연인이나 배우자가 무조건 밤 10시 전에 귀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유-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밤늦게 혼자 다니면 위험해.) 또, 어떤 상황이든 다른 이성과 연락하고 지내면 안 된다고 얘기한다. (이유-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어! 남녀 사이는 어떻게 될지 몰라.)
친구와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자리라면 밤 11시도 훌쩍 넘길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은 예외로 치자.) 다른 이성과의 연락도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다. 옛 친구가 안부를 물거나 소식을 전하려 오랜만에 걸어온 안부 전화일 수 있다. 업무 때문에 이성과 얘기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이성과 수시로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의구심을 가질 상황도 아니지만 사랑하니까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며 지낸다고 하자. (극단적인 예시 같고 생각만 해도 답답하지만 이런 경우가 정말 있다.)
내 의견과 가치관을 양보하면 평화로운 관계로 지낼 수 있을까? 불편함을 오래 감수하고 지속하면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부터 편한 것이 낯설어진다. 스스로 불편함의 옷을 꺼내 입고 나면 그게 내 의지였는지 상대의 의지였는지 희미해진다. 잠시 편함을 누리는 날엔 마음이 매우 불편하고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상대에게 죄책감이 든다. 이쯤 되면 '가스 라이팅'이 떠오른다. 가스 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시사상식사전 발췌)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할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비슷한 영향을 끼치면 함께하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면 양보해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서로의 상식이나 가치관이 비슷해서 수월하게 합의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존재한다. 많은 경우 성격차이라고 답한다. 성격이 달라서 사랑에 빠지고 결국엔 그것 때문에 헤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다른 성향의 사람끼리 만나야 잘 산다고도 한다.
성격차이는 가치관의 차이와도 같다. 처음부터 가치관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노력해서 차이를 좁힐 순 있지만 거리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가치관이 완전히 일치하는 관계라면 다른 한쪽의 삶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건 분리된 둘이 아니라 원래의 하나를 뜻한다.
불편한 것도 불편한 것 나름이다. 얼마든지 나를 드러내며 자신의 모습으로 편하게 살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달란트를 타고 난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태어난 모습대로 스스로를 펼치면서 살자. 내내 모습을 숨겼다면 원래의 내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보자. 이제부터 편한 걸 낯설어하지 말고 불편한 것을 낯설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