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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Nov 11. 2021

인생의 모든 비밀을 알게된다면?

무의식 보기 세션 종료, 어쩌면 프롤로그?

두 달 남짓의 기간 동안 무의식의 의식화 세션을 진행했다. 후기 같은 느낌으로 쓰고 싶었지만 막상 또 어떻게 글이 풀릴지는 모르겠다. 백신 2차 접종 전날, 기막힌 타이밍에 세션이 끝나서 겸사겸사 제대로 드러누울 요량이었다. 며칠 동안 몸도 마음도 푹 쉬기를 바랐는데 벌써 4일 차가 되면서 나는 빠르게 되살아 나는 중이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힘듦은 다르지만, 나는 늘 최고조의 힘듦을 무던히도 견뎌냈다. 모두 그럴 거야- 사는 게 다 이런 거지-라고 토닥이면서 그렇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빛을 향해 앞으로 걸었다. 힘든 것 어려운 것들 다 버리고 훌훌 털어버린다는 미명 하에 현재를 살려고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나의 과거와 당시의 감정들이 무겁게 끌어당겼다. 그리 당겨지는 줄도 모르고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에고의 기분을 맞춰주기만 했다.



2021년 11월 11일, 이쯤 되니 지난날들이 전생처럼 멀게 느껴진다. 누군가 말하기를, 마음공부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하게 되는 거라고 한다. 마음이 시켜서.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살만하고, 또 그렇게 살아지니까 산다. 나를 즐겁게 하는 활동들로 틈틈이 자신을 위로하며 지낸다. 


나도 이미 그 모든 걸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없는 살림에 돈을 부어 해외여행도 가고, 사고 싶은 것도 사봤고, 연예인 덕질을 하며 스트레스도 발산해 보고. 그 후에 남은 건 일시적인 행복... 그리고 또다시 몰려드는 알 수 없는 깊은 무엇. 이건 외롭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살아서 그런 거라고. 짝을 찾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연애를 해도 또 다른 어둠이 몰려들었다. 상대와 나는 서로 닿을 수 없었고 우리 사이에 놓인 그 벽을 뚫을 수 없었다. 벽에 기대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다른 걸 꿈꾸며 상처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그럼 나는 또 그 기억을 모두 잊고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다. 남들은 다 잘만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늘 이래야 하냐며 원망할 틈조차 없이, 먹고사는 문제가 늘 내 옆구리를 찔러댔다.


그러던 지난 8월의 마지막 일요일, 나는 삶이 설계한 정교한 계획 속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날 느껴진 내 상태는 심리치료가 필요했던 수준이라고 한다.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에게 선택되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건 삶을 재정비하라고 신이 주는 기회였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받으며 온갖 감정의 폭풍우를 그대로 맞은 것 같다. 삶은 나를 잘 따라오게 하려고 적절하게 눈앞에 참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명상은 저절로 숨 쉬는 것처럼 이루어지고 그냥 그렇게 되어졌다. 모든 건 나를 향해 열린 채널이었으며 그들을 통해 나는 삶이 주는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맞는 걸 선택할 때면 옳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나면 마음속이 조여온다. 내 안의 신은 몸의 감각을 통해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풀리지 않던 비밀, 알 수 없던 것들을 모두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까? 사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단지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부모를 친구를 연인을, 과거에 나를 상처 준 모든 이들을.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 무의식을 의식화하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내 이기심과 두려움을 인정하게 된다. 내가 모르고 저지르는 일이라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면 그건 내 잘못이 맞다. 모른다는 게 면죄부가 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삶의 이런저런 어려움을 피해 느낌대로 잘 살아왔지만, 그 끝엔 다른 사람들이 겪은 만큼의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는 게 또한 삶이다. 이런 얘기를 쓰려던 건 아닌데.. 손이 가는 대로 나오는 말들을 들어줘야 할 것 같다.


모든 건 수단이 되었다. 모닝페이지, 이른 아침의 산책, 대화, 명상, 사진... 지난 시간 동안 하루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절실하게 꽉 붙잡으며 지냈다. 감정이 쏟아져 나오고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몸이 반응하고, 이건 이제 더 놀랍지도 않다. 정화를 하고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 싶을 때 다음번 판도라 상자의 뚜껑이 열린다. 두려워하지 않고 그걸 기꺼이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게 다음의 할 일이다.


칼 융은 이렇게 말했다.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것을 바로 운명이라 부른다.> 혹시 지금의 이런 삶의 흐름조차 운명대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게 운명이든 아니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괜찮기 위해, 괜찮으려고 삶을 긍정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내 모습을 긍정하자. 공부를 잘하는 나 말고, 외모가 뛰어난 나 말고, 일을 잘하는 나 말고. 그런 거 다 떼어버린 나. 아무것도 모르고 서툴고, 잘하는 것 하나 없는 그런 나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해 주자.


나의 여정은 계속될 테고 이 글에 이어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적게 될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완성된 글은 저만의 운명을 갖는다고.. 그 글들이 빛을 볼 날이 오겠지 싶다. 여전히 이것저것 부족함 투성이인 나는 지금도 길 위에 서 있다. 모든 것들이 사랑이고 그걸 알게 된 나는 지금의 모든 게 있는 그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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