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라산
2020년 1월 1일.
29살이 되었다.
24살부터 28살까지 숨 가삐 달려오던 나의 일상을
모조리 정지시킨 해였고,
7천만 원 하고도 조금 넘는 , 8천만 원은 채 되지 않은 돈을 전부 갚은 해였다.
모든 것을 떠나 나에게 있어 지난 5년은 마치 시시포스와 같았다. 끝나지 않을 형벌이 계속되었다. 친구, 가족,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 못할 나의 비밀은 하루하루 몸집을 불렸고, 마음 한 구석에서 온몸에 이르기까지 축축하게 스미어 들었다.
_사실 이 기간동안 빚에 허덕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라고 하면 거짓이다.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못 하고 아꼈다고 해도 거짓이다. 밥알마저 말라 딱딱하고 찬 삼각김밥에 컵라면을 먹어야 한다고 해도 후배들에게 4,000원이 넘는 커피를 흔쾌히 사줄 수 있는 선배여야 했다. 데이터를 찾아 지하철 어디인가에서 연락을 하거나 주머니 속 짤짤이로 편의점에서 데이터쿠폰을 구매하는 한이 있어도 친구들과의 모임에는 꼬박꼬박 나갔어야 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알량하고 값싼 자존심 따위로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이었다._
매일 아침 산으로 바위를 올리고, 다시 올리던 삶이 끝나고 2020년이 되기 전 12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외국에 계신 아버지를 따라가 일을 도와드리겠다.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긴 했지만 실은 그냥 놀고먹어 볼 셈이었다.
일을 해도 내가 가진 돈은 늘 마이너스였는데,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라니. 이 얼마나 마음 편한 삶인지.
2020년 1월 1일
삼식이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한라산을 오른 삼순이처럼 불현듯 한라산을 가기로 했다.
불현듯.
새벽녘, 아직 해도 채 뜨지 않은 어두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계단을 앞사람의 등산화만 보고 가뿐 숨을 헉헉 토해내며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동이 트기 한참 전에 오르기 시작해서, 기다려야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진달래 대피소에 자리를 잡았다.
다이소에서 산 김장봉투를 얼기설기 엮으니 얼추 비닐하우스의 모양새였다. _비록 찌그러지긴 했지만 사람이 들어갈 수는 있었다._ 패딩 지퍼를 목 끝까지 잠그고, 모자를 쓰고 김장봉투 안으로 들어가 삼삼오오 온기를 나눈다. 김장김치도 아닌데 추위는 우리를 김치 속처럼 버무린다.
무, 부추, 고춧가루, 액젓 생김새도 맛도 하나 같이 다른 이것들은 김치가 되기 위해 모였다. 백록담에서 맞이하는 새해의 일출은 생김새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우리를 김장봉투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한참을 추위에 떨던 나는 일출이 떠오르던 순간 결국 탈이 나고야 말았다.
오한과 구토, 식은땀은 체온을 더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백록담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발걸음을 옮겼지만 10m도 채 가지 못하고 진달래대피소에서 일행들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어찌나 억울하고 분하던지.
다 똑같이 추위에 떨었는데, 왜 이런 일은 나에게만 벌어지는지.
지난 4년 그리고 8개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괜히 욕지기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에이 시팔...'
조선팔도의 모든 쌍욕들과 분노와 억울함을 아픔과 함께 쏟아내고 있을 때,
2020년, 한 해의 첫 번째 날을 시작하는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웠던 2019년의 밤이 서서히 밝아지는가 싶더니, 어느새인가 온 천지가 붉게 물들었다. 또 밤새 쌓인 눈과 가지마다 얼어있던 상고대들이 볕에 녹으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구름의 바닷속을 헤집고 태양이 떠 오르던 그 장관을 바라보며
지난 일들도, 내가 지금 아프다는 것도, 욕을 하고 있던 사실 까지도 모두 잊고 있었다.
진짜 별 거 아니었구나. 그렇게 억울하고 힘들어했는데...
아무것도 아니네.
아홉수.
내 20대의 마지막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라산 (1,950m)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휴화산.
금강, 지리와 더불어 3대 삼신산으로 일컬어진다.
정상엔 둘레 3km에 이르는 화구호인 ‘백록담’이 있다. 한라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하여 맑은 날의 백록담을 보려면 3대가 적을 쌓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