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트위팝을 찾아서

세이수미와 검은잎들

by 혀님

트위팝은 이상하다. 인디팝, 기타팝, 드림팝, 커들코어, 쟁글팝 등 교집합을 가지는 장르들은 많지만 그 어느 장르와도 같지 않다. 인디팝과는 거의 유의어처럼 쓰지만 인디팝 밴드가 곧 트위팝 밴드로 통하지는 않는다. 트위팝 뱃지는 폐쇄적 팬덤 하에서 고유한 승인을 거쳐야만 획득할 수 있다. "Fuck me I'm twee"는 아무나 외칠 수 있는 슬로건이 아니다.


2005년 피치포크가 내놓은 트위팝 소개 기사는 트위팝의 정체를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 있고(popkids, popgeeks) 그들이 듣는 음악을 부르는 이름도 있다(p!o!p, twee, anorak, C-86). 전설적 밴드의 표준도 있고(Tiger Trap, Talulah Gosh, Rocketship) 전설적 레이블의 표준도 있다(Sarah, Bus Stop, Summershine). Stephen and Aggi, Cathy and Amelia, Jen and Rose, Bret and Heather and Calvin처럼, 성이 아닌 이름을 주로 부르는 그들만의 팝 스타도 있다. 그들만의 잡지(Chickfactor), 웹사이트(twee.net), 메일링 리스트(the Indie pop List), 미적 정서(TWEE AS FUCK 같은 것), 페스티벌(the International Pop Underground), 도상(고양이 손그림), 패션 액세서리(바레트, 카디건, 고양이가 그려진 티셔츠, TWEE AS FUCK이 쓰인 티셔츠), 내부용 농담도 있다(Tullycraft의 곡과 TWEE AS FUCK). 요컨대 그들은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는 것.


위키피디아의 설명은 한결 사전적이다.


1986년 NME의 컴필레이션 C86에서 기원한, 인디팝의 하위 장르. 소박함과 알아채기 쉬운 천진난만함이 특징. 남녀 화음, 캐치한 멜로디, 사랑에 대한 가사 등이 뚜렷한 특색.


"그래 펑크 록, 스카, 랩, 하우스를 들으려면 들어, 씨발 난 트위니까(Fuck me I'm twee)"라고 소심하게 읊어대는 Tullycraft나,

Tullycraft - Twee

가장 메인스트림에서 성공한 Belle and Sebastian 정도. 트위팝의 고유한 정서는 딱 이 정도다.

Belle and Sebastian - The State I Am in

쟁글쟁글한 기타 사운드로 밝고 캐치한 멜로디가 전개되지만 자세히 듣다 보면 사랑 노래의 결말은 뭔가 뒤틀린 채 끝. 어떤 면에선 페미니스트 음악 운동인 Riot Grrrl과 정서를 공유하므로 여성적 자아를 절대 부정하지 않음. 기본적으로 로-파이 정서를 지향하고 세련됨, 쿨함은 지양. 결국 의도된 연약함, 패배감, 우울함은 수동적 공격성으로 귀결. 그래서 예컨대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의 특징을 나열하는 공격적인 가사는 지극히 트위팝인 것이다.


그러니까 실패한 사랑, 소심한 인생, 찌질한 사정이 있는 곳에 트위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의 음악 씬에서 "우리는 트위팝을 하는 밴드입니다"라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 언니네 이발관 이후 사랑스러운 기타팝 밴드도 많았고 시시한 음악들이 인디팝의 유행을 타고 대중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랜드민트 페스티벌 같은 음악축제가 우후죽순 생겼던 것이 그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트위팝이라는 라벨을 붙일 만한 음악은 여태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트위팝이라는 장르에 대한 소개조차 부진했다. 왜. 우리에게도 중2병이라는 근사한 말까지 있는데.


그런데 최근 충분히 사랑스러우면서 유약한 트위팝 정서를 구현하는 한국 밴드를 알게 됐다. 두 밴드, 모두 부산 출신. 몇 곡을 듣고 기뻤다.


Say Sue Me - Old Town

세이수미는 자신들을 서프록 밴드로 소개한다. 지난해 영국 레이블과 계약해 해외에서 조금씩 유명세를 탄 뒤 오히려 한국으로 역수입돼 이름을 알리고 있다. 서프록과 트위팝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쟁글쟁글한 기타와 심벌 노이즈가 찰랑이는 파도소리와 닮아 있어서일까. Tullycraft가 내놓은 서프 콘셉트의 명반 제목도 Beat Surf Fun이었고 The Drums도 초창기 서프팝으로 유명해졌다. 세이수미의 사운드는 포스트록, 슈게이징, 드림팝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지만 트위팝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멋진 곡들도 있다. 특히 보컬의 담백한 목소리는 The Vaselines, Alvvays 등 트위팝 밴드의 여성 보컬들을 떠올린다.


검은잎들 - 바질

역시 부산 출신인 검은잎들. 이들은 쟁글팝 밴드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특히 메신저 같은 곡에선 The Smiths의 사운드를 재현하려는 노력이 노골적이다. Northern Portrait, Cats on Fire, The Lucksmiths 등 The Smiths에 가닿으려던 트위팝 밴드들은 이미 많았다. 물론 검은잎들도 그들만큼 개성 있게 그 일을 해낸다. "아무렇게나 부셔버리고/ 아무렇게나 부셔버리는/ 쓸쓸한 눈을 하고선/ 널 사랑한다 말하네" 기형도의 시에서 따온 밴드 이름, 사랑과 삶에 대한 양가감정, 로-파이 사운드까지, 이만치 트위한 한국 밴드를 본 적이 없다.



헬조선 트위팝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에서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어로 부른 노래를 지상파 라디오에서 트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 때문에 일본 음악 가운데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부른 노래들이, 특히 시부야-케이가 유희열의 주도로(?) 소개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라디오를 통해 Flipper's Guitar를 알게 됐고 Camera! Camera! Camera! 같은 트위팝 넘버는 당시에도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좋은 노래를 듣는 기쁨이었다. 검은잎들의 음악을 들었을 때가 그런 기분이었다. 좋은 노래를 듣는 기쁨에 더해 찌질대도 모국어로 찌질대고 싶은 기분. 'TWEE AS FUCK'보다 '존나 트위'가 더 가슴에 와닿을 수밖에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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