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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Oct 07. 2022

풀꽃 같은 나

새롭게 알아가는 나의 장점

퇴사 이후 매일 나의 장점에 대해서 곰곰이 고민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에 좀처럼 마음에 쏙 드는 답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면 나는 장점이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이 들다가도 영감처럼 문득 나의 장점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단숨에 어딘가 적어놔야 한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내가 깨달은 내 장점은 새롭지만 새롭지가 않아서 금방 머리에서 잊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어렵게 찾은 나의 장점을 잊어버리기가 이렇게 쉽다니,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나를 오래 알수록, 깊게 알수록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 연애를 할 때도 그랬고, 직장 생활도 그랬다. 어쩌면 나는 진국인 게 아닐까.


지금까지의 연애는 대개 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대시를 받으면서 시작했다. 나와 몇 개월간 가까운 친구로 지낸 이들이었다.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술을 마시고, 즐거움과 속상함을 나눈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많이, 많이 좋아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잘하는 것도 좋아했고, 타인에게 표현하는 친절함을 좋아했고, 농담을 잘하는 것도 좋아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어색한 사이를 유지한다. 내가 꽤나 내성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와 수일간 같이 일을 하게 되고, 저녁을 먹으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될 때쯤, 대부분이 나를 좋아해 줬다. 대표님은 말할 것도 없고, 옆 테이블에 앉은 선배가 그랬으며, 처음에는 어색했던 상무님과도 나중에는 많이 가까워졌고, 다른 상무님도 퇴사한 나에게 따로 연락하여 만나자는 약속을 잡는 걸 보면 썩 싫어하는 것 같지 않다.


같은 회사가 아니었어도 같이 일할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도 나를 알면 알수록 좋아했다. 가깝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깝지는 않지만 종종 보던 사람들이 가끔씩 연락을 주는 걸 보면 고맙고 따뜻한 마음이 든다. 이제 인생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될 나인데도 연락을 주는 것을 보면, 나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들이 왜 나에게 호감을 느꼈을까 고민해본다. 평생 그 답은 알 수 없겠지만, 유추해본 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픈 바, 나는 친절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 이어서인 것 같다.  항상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고,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고, 좋은 모습을 부각하는 칭찬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일을 할 때는 대부분 함께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진정성을 가지고 임한다. 역시나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피해를 가하여 내 이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들과 잘 지내고 싶고,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기쁨인 마음으로 임했다. 


이게 맞다고 생각하고 싶은 이유는, 고민 끝에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친절함과 진정성은 내가 언제나 나의 정체성이길 바라는 요소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주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그 덕에 내성적인 성향도 단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내성적인 나의 성격도 사실은 장점이 될 수 있음을 최근에서야 알아가고 있다. 나는 마치 니치 시장의 선도주자이다. 내성적인 사람들이 나를 편해하고, 또 나랑 잘 맞는다고 느끼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는 꽤나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 아닐까? 세상이 외향적인 사람들로만 가득 찬 게 아닌데, 누군가는 내성적인 사람과 비즈니스를 하고, 소통을 하고, 친구가 되고, 감정을 나눠야 하니까. 나는 누군가에게 외향적이고 능숙한 사람보다 더 소통하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고, 혹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했지만, 그리고 믿고 싶었지만, 받아들이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이 시를 알게 된 고등학교 시절 이래로 이 시는 단순히 아웃라이어들을 위한 위로의 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오래 알수록 좋은 사람일이라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해보면, 이 시는 위로가 아니라 깊은 곳에 숨겨진 장점을 가진 사람에 대한 찬사일 수 있겠다.


그래서 최근에 실패한 면접을 곱씹어볼수록, 나의 장점이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너무도 후회가 된다. 사실은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정말 장점이 많은 사람인데. 나의 장점에 대해서 내가 충분히 고민하고, 무엇보다 인정하지 않아서 부각되지 않은 나의 매력이 아쉽다. 후회가 후회로 남지 않으려면 다음에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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