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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Jun 26. 2023

[사월에 영화]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스포)

I'ma do my own thing

스파이더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말을 안 듣고, 안 들어서 자꾸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게 스파이더맨의 매력이라고 말하지만, 노웨이홈 막바지에는 그의 철없음이 스스로에게 불러온 비극이 너무 개탄스러워 가슴을 주먹으로 누르기도 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주인공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말을 안 듣는 14살짜리 어린아이다. 말을 안 듣기 때문에 매번 더 깊이있고 책임감 있는 스파이더맨으로 성장하지만 그래도 정말 말을 안 듣는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보고 온 오늘, 나는 처음으로 스파이더맨의 어리고 막무가내인 성격이 조금, 부러웠다.


“Everyone keeps telling me how my story is supposed to go.
Nah, I’ma do my own thing.”

운명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미겔 오하라는 말한다. 그는 누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덩치도 크고, 나이도 많아 보아서 권력이 강해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말하는 미겔 오하라의 말에 반기를 드는 스파이더맨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이웃 스파이더맨은 다르다. 여느때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 것에는 동의하지도, 동조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말을 듣지 않는다. 원래 태생이 말을 안 듣는 애이기 때문이다. 또 한 번 스파이더맨의 철없는 면모를 보여주기에 한탄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을 즈음, 나는 영화관을 나와 집에 도착해서 사실은 마일스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주 우리보다 강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성향은 더 응축되어 간다. 왜냐하면 강해보이는 상대방과의 갈등을 빚어서 얻을 게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겔 오하라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피터와 그웬의 결정이 절대 낯설지 않다. 


하지만 마일스는 그렇지 않다. 마일스는 언제나 남들과 다르다. 정이 많고 사랑이 많은 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시도해보기도 전부터 포기하라는 미겔 오하라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마일스처럼 용감하지 못했어서, 그래서 그가 부러웠다. 모두가, 강한 사람이,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고 할 때 맞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사람들이 끝내 믿어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믿는 길로 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을 때도 주눅들지 않고 계속 해낼 수 있는 용기. 나는 14살의 마일스가 꽤나 부럽고 멋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멋있는 것은 마일스 뿐만 아니다. 주인공의 친구의 친구와 악당의 친구까지도 모두 매력적이다. 1편부터 영화의 중심을 이루던 '다양성'이 2편에도 그대로 옮겨져 왔지만 기시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1편에는 애니메이션 돼지 스파이더맨, 망가 스파이더맨 등 마이너 문화 코드를 가져왔다면, 2편에서는 그보다 더 다양한 스파이더맨을 보여주는 동시에 획일화된 체제에 반항하는 '호비'와 체제에 순응하는 '제시카' 등의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 시키면서 다양성과 민주주의 키워드를 변주한다. 모두 이해할만한 각자의 철학과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어느쪽도 밉지 않다. 미겔 오하라의 스토리를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장면들은 짧지만 그의 고통과 고뇌를 이해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2시간 반 동안 무료할 새 없이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탄탄하게 이어가면서도 다양하게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가능하다니.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탄탄한 스토리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 1편을 다시 보았는데 놀랍게도 1편이 더 재밌었다. 미국식 코믹 작화의 느낌도 더 잘 살려내어 빈티지한 디자인 묘미가 더 강했고, 마일스의 성장기를 더 다이내믹하게 풀어내었고, 피터와의 케미스트리가 만들어내는 버디 무비의 유쾌함과 감동도 더 강했다. 뭐, 음악은 말하기에 입 아프다. 


그러니 3편도 기대하고 있다. 나와는 케미가 잘 안 맞던 스파이더맨, 너를 리스펙 하기로 했으니 얼른 3편으로 돌아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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