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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Jul 23. 2023

이불, 비빔국수, 자두

여름이었다.

진득한 눈꺼풀을 조금 떴다, 다시 감았다, 아까보다 조금 더 떴다, 다시 감았다. 끔벅끔벅인다. 돌아가는 선풍기에 흩날리는 잔머리가 간지럽다. 옆으로 누워있던 몸을 반대로 움직이니 얼마 전에 새로 산 냉감 이불의 찬기가 피부 표면에 차르륵 떨어진다. 조금 전 더워서 잠깐 잠이 깼던 것 같기도 한데, 옆에서 자던 이가 꺼진 선풍기를 다시 틀었던 것 같기도 하다. 돌아가는 선풍기를 내 방향 쪽으로 살포시 놓아주었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선풍기 바람이 곳곳에 와닿는다. 그게 조금 전이었는지, 몇 시간 전이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그리 나쁘지 않은 열대야였다는 것은 알겠다.


느릿느릿하게 일어난다. 옆에서 자던 이는 분주하게 일어나서 버터에 토스트를 굽고 있다. 토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접시에 담아주고, 자기는 어젯밤 마시던 알코올의 여독을 씻어낸다고 컵라면을 끓인다. 그렇게 조용하고도 폭신하게 늦은 아침이 흘러간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배가 고프다. 아침에 토스트를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에어컨 대신 틀어둔 선풍기가 시원찮은 열기 때문인지, 새콤한 비빔국수가 먹고 싶다. 같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이에게 묻는다. 오빠도 비빔국수 먹을래? 고민하는 거 보니 배가 고프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혼자 먹으면 심심해하는 나를 알기에 먹는다고 대답해 준다.


고추장 두 숟가락, 설탕은 좀 많다 싶을 정도로, 식초와 간장 조금, 빠질 수 없는 간 마늘까지. 숟가락으로 소스를 섞을 때마다 스윽 스윽 부드러운 도자기 그릇 소리가 지나간다. 메밀면은 삶아서 아주 차가운 물에 씻는다. 탱글 해질 수 있도록. 물을 털어내자마자 만들어둔 소스와 채 썰어둔 양파, 그리고 시어머님이 담가준 열무김치까지. 나는 어른이니까 참기름은 아끼지 않고 넣는다. 양푼 그릇에 넣고 한꺼번에 비비고 그대로 양푼 채로 먹는다. 두 쌍의 젓가락이 양푼 안을 분주하게 움직인다.


아 잘 먹었다. 설거지는 얻어먹은 이가 한다. 설거지가 끝나면 기특한 일을 했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자두를 냉장고에서 꺼낸다. 냉장고에 밤새 숨 쉬고 있던 자두를 베어 먹으니 속살의 찬기가 이에 닿고, 그다음에 혀에 닿고, 그다음에 온 입 안을 채운다. 새콤하고 상큼하고. 창밖의 습기는 잠시 잊는다. 과일을 즐기지 않지만 설거지 한 애가 좋아하니까 나도 맛있게 먹는다. 자두를 먹는 입술이 자두만큼이나 빨갛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두 한 개 먹을 동안 세 개를 부지런히 먹는 그 입이 귀엽다고도 생각한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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