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민 Jul 27. 2023

좋아할수록 외로워지는 방법

양다솔 작가의 <아무튼, 친구>를 읽고

양다솔 작가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인생 첫 퇴사를 하고 시골 마을에서 혼자 숙소 침대에 앉아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었을 때는, 가난한 나의 마음에 이자를 붙여주었고, 두 번째 퇴사를 고민하던 때 다시 읽은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은 더 이상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회사의 굴레를 끊어낼 용기를 주었다.


검은 글자들이 모여 그려내는 양다솔 작가는 화창하고, 유쾌하고, 외롭고, 유약하다. 책 한권으로 실소와 눈물을 시소처럼 오가게 만드는 그런 작가. 그래서 좋다. 해가 밝을수록 그늘이 짙어지는 광경이 나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이지, <아무튼, 친구>는 아무튼, 마음이 좀 아리다. <아무튼> 시리즈는 대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정이 뚝뚝 흘러넘쳐 나까지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영글어 가는 마음이 드는데. 이 책은 글쓴이에게 애정이 영글어 가는, 괜히 그런 마음이 들었다.


작가 양다솔은 친구를 정말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고양이, 술, 여름, 운동, 쇼핑을 좋아하듯 친구를 좋아한다. 물론 작가 양다솔도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다도를 좋아하고, 채식을 좋아하고, 요리를 좋아하고, 화장을 좋아하고, 꾸미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친구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조금 슬펐다. 좋아 죽겠는 대상이 사람이 되면, 자주 외롭기 때문이다.


나도 왕년 친구 꽤나 좋아해본 경력직이다. 그 때 당시 만났던 남자친구는 별로 보고 싶었던 적이 없지만 친구는 자주 보고싶었다. 월요일에는 얘, 화요일에는 쟤, 수요일 점심에 다시 얘. 그리고 목금토일 계속. 같이 오돌뼈도 먹고 싶고, 점심에 돈까스도 먹고 싶고, 해가 떠오르는 새벽에 콩나물 국밥도 먹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롯데월드도 놀러가고 싶었다.


하지만 고양이, 술, 여름, 운동, 쇼핑과 달리 사람에게 줘야 하는 사랑의 적정량은 정해져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정해진 선이 나를 제외한 모두를 감싸고 있는 듯 보였고, 나는 하나한 더듬어 찾아낸 그 둘레를 점으로 표시해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운동회 날에 돌돌거리며 운동장에 하얀 선을 만들어내던 라인기가 떠오르곤 했다.

양다솔 <아무튼, 친구> 중


문지방을 지키고 있을 어린 다솔의 모습을 상상한다. 답장 없는 친구를 길에서 기다리고 있을 어른 다솔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면 보글보글 졸여지고 있을 그 불안한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그곳에 서있는 것처럼. 사람은 겪어본 감정만 상상할 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그 마음이 낯설지 않다. 내가 싫은 걸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걸까. 내가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


친구 뿐만이 아니었다. 일을 하다 만난 업계 선배. 직장 상사. 잠재 고객사 담당자. 답이 오지 않는 카톡방과 메일함을 보며 나는 실수했을지 모를 과거의 나를 저주했다. 그 사소한 상상들이 얼마나 자기파괴적인지도 모르고.


나는 항상 싸우고 있구나. 나를 저편에 혼자 두고 세상 모두와 싸우는구나.

양다솔 <아무튼, 친구> 중


작살 하나로 상어 여러마리와 혈투를 벌이는 노인처럼, 외롭고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그 모습이 익숙해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조금 아렸다. 잃는게 너무 두려운, 그래서 잃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엄격하고 또 엄격해져야 하는 누군가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나는 잃는것에 용감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를 싫어해서, 나랑 안 맞아서 떠날 사람은 붙잡는 일은 나에게 작살을 꽂는 행위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용감해지기 위해서는 그 싸움터에 있는 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타자를 좋아할수록 외로워지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좋아할수록 덜 외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들이 뿜어내는 빛과 그늘에 가려지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

양다솔 <아무튼, 친구> 중


그래서 나는 <아무튼, 친구>에서 등장하는 빛과 그늘이 아닌, 그 아래에 있는 양다솔 작가를 본다. 내 친구였다면 아마 만나서 나는 아주 세게 안아줄테다. 그리고 그늘 아래서 바람을 쐬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꼭 이야기해줄테다.

작가의 이전글 미술과 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