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나를 표현할 때 의존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3년 가까이 만났던 남자친구에게 의존하기를 좋아했는데, 좋은 일이 있을 때 바로 달려가서 종알대기에 여념이 없었고, 슬플 때는 어깨에 기대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래서 혼자서 감정을 누리는 법을 잘 몰랐다. 이러한 의존증에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살던 어느 초여름 날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으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의존할 사람이 없어지니 하고 싶은 말들도 나누고 싶은 감정들이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하지만 남자친구 없이도 혼자 씩씩하게 잘 살 수 있노라고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또 다른 사람으로 그 부재를 채워 나의 감정들 의탁하는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내 감정들은 그렇게 사람이 오고 떠나갈 때마다 힘 없이 흔들리고 추락해야 하니까. 이제 더 이상 위험에 나를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내가 되기 위한 연습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글 쓰기를 시작했다. 갈 곳 잃은 나의 말과 감정들을 쏟아내기 위해. 처음에는 이별한 슬픔을 글로 쏟아내기 위해 썼다. 펜촉이 막 지나간 곳에 잉크가 눈물방울로 번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차츰 왜 이별하게 되었는지, 만남과 이별 속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따라 흘러가다 나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글이 쌓일 때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단면적인 것들부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은지,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지 않은지. 나는 따뜻한 것들을 좋아한다. 예컨대 팔다리가 녹아내릴 것 같은 목욕, 머그컵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홍차, 오후 창문 너머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함께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마음들까지, 모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한 겨울 벌어진 코트 사이로 파고드는 매서운 칼바람이 싫고 다른 사람의 말,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무례한 사람들도 싫다. 이렇게 이야기는 꼬리의 꼬리를 물어 나라는 사람이 지나온 시간, 지금 마주한 시간, 그리고 대면할 시간들을 글을 통해 파고든다.
나에 대한 이야기들이 쌓여갈 때마다 나는 조금씩 내가 더 좋아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것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것에 대해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이것들을 글로 쓰다 보면 오롯이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상황, 있는 감정을 그대로 관찰하게 된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나는 항상 더 잘하려고 애써왔고 누구에게든 사랑을, 애정을, 연민을 쏟아왔고, 그것들이 부족할 때면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간절함을 품었다.
얼마 전 일기를 쓰다 말고 지나간 공책 속 일기들을 들춰봤다. “오늘은 5시 반에 일어나서 조깅을 갔다.” “오늘도 5시 반에 조깅을 가려고 했는데 눈 떠보니 8시였다.” “처음으로 명상을 해보았는데 매일 하면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질 것 같다.” “오늘 명상을 하다가 반도 못 듣고 코 골면서 자버렸다.” “오늘 남자친구와 주로 가던 바에 가서 혼자 진토닉을 먹었다. 혼자 드라마 찍느라 바빠 죽겠다.” 별 것도 아닌 내용들인데 그 속에서 지나온 나의 희로애락이 느껴져서 뭔가 웃기기도, 짠하기도, 기특하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사랑해 마지않는 친구들과 새벽까지 소주를 기울이며 “내가 내 친구들을 사랑하는 만큼만 나를 사랑해도 충분할 텐데”라고 이야기하며 격하게 공감했다. 글을 통해 나를 타자화하고 나의 시간들을 객관화하다 보니 이제 그 사랑의 행선지가 나를 향하게 하는 법을 얼핏 알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예전만큼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를 발견한다.
만성 의존증을 앓고 있던 이전의 나는 나를 평가하기를 좋아했다. 그것도 장점을 극소화, 단점을 극대화해서 아주 엄격한 잣대로. 실수나 불운을 맞닥트렸을 때면 두더지 마냥 끝도 없이 나의 부족함에 대해 파고들어 갔다. “보고서에 도표가 잘못 들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다니, 나는 너무 일에 애정도 없고 무책임해. 그렇게 무책임하면서 또 잘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모순 덩어리야.” 블라블라. 한 시간도 더 할 수 있었다. 이미 습관이 되어 온 몸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다 괜찮다고, 나를 잘 아는 타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듣고 싶어 했나 보다. 그게 당시의 연인이었을 테지. 하지만 뒤늦게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본 나는 생각보다 사랑스럽고 괜찮은 사람이다. 때문에 애초에 나에 대한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미움 같은 것 뒤집어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 무게를 걷어내 줄 누군가를 전만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시간 날 때 글을 쓴다. 그 형태는 점점 다양해져서 나를 주제로 이야기화 할만한 것들을 메모장에 마구 적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 혹은 좋아하는 영화를 만났을 때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그 책, 영화가 왜 좋았는지를 적기도 한다. 그렇게 나에 대해 더 알아가면서 나를 좀 더 좋아하는 연습을 한다. 고등학교 때 외우려고 연필심으로 꾹꾹 눌러쓰던 영단어들처럼, 머릿속에, 마음속에 나에 대한 애정과 기억들이 새겨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