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버티며 출근하지만 괜찮습니다.
번번이 이어진 취업 실패 끝에 두 곳의 회사에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 고뇌에 빠졌다. 일은 많지만 연봉 많이 주고 남들이 알아주는 회사를 가느냐, 연봉은 훨씬 적고 남들이 잘 모르는 회사이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가느냐. 깊은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했을 때, 내 선택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
“내 20대의 단 하루도 버티면서 살고 싶지 않아.”
와, 멋있다. 돈과 명성을 포기하고 내린 선택에 다른 사람들이 칭찬을 보낼 때면 ‘에이 아냐’ 하며 자연스럽게 웃었지만 나도 내가 멋있더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매일 아침 버티는 마음으로 일어나서 출근을 한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한들 직장은 직장이었고, 밖에서 바라보던 직장의 실상은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 입사 전 내가 하리라 생각했던 일들과 다른 일들을 하게 되는 상황이 많았고, 이전까지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없다고 마음 편하게 생각해왔지만 직장에서는 못하는 일, 하기 싫은 일을 잘해야 했다. 낯선 사람을 대하기 너무 어려워하는 내가, 친구에게도 부탁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내가,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보이는 낯선 사람들과 만나 명함을 내밀며 웃음을 짓고, 먼저 다가가 부탁을 해야 될 때면 심장이 요동치고 관자놀이가 아려왔다.
부지런하게 성장하고 싶었지만, 못하는 일, 하기 싫은 일을 잘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 상처 받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안 하는 척, 못하는 척 하기 시작했다. 못하는 일을 잘해보겠다고 12시까지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하던 의지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오후 4시부터 시계만 바라보고 있게 되었다.
꿈과 희망이 넘치던 대학생 시절, 워라밸을 종교 마냥 중요시하고, 주말만 바라보고 사는 어른들이 그렇게 한심해 보였다. 커리어를 만들어가는데 20대에 ‘라이프’ 정도 잠깐 포기하고 살 수 있는 거 아니야? 하루 24시간 중 9시간, 그렇게 5일을 연달아 보내야 하는 직장을 어떻게 버티는 마음으로 보내지?
내 한심함의 대상이 되었던 모든 분들에게 사무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24시간 중 9시간을 버티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음을, 그래서 잠깐이라도 숨을 쉬게 해주는 ‘라이프’는 애를 써서 사수해야 하는 것임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래서 토요일 동이 트기 전 강릉행 새벽기차를 타고 떠나서 일요일에 돌아오기도 했고,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친구들과 이태원, 연남동, 성수동, 강남, 셀 수도 없이 많은 맛집과 술집들을 옮겨 다니고, 또 무작정 눈치 없는 척 휴가를 내고 혼자 몇 날 며칠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혼자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낮잠을 자며 보내기도 했다. 그런 ‘라이프’에서 오는 에너지로 근근이 버티며 다시 평일이 되면 버티면서 출근길에 나섰다.
매일같이 ‘라이프’로 도망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손에 쌓여가는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불행을 주머니에 욱여넣으며 하루하루 지냈다. 당연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주머니가 넘쳐 무력감이 찾아왔다. 분명 꿈꾸던 커리어가 있었는데, 새벽 3-4시까지 일해도 집 가는 택시 안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던 날들이 있었는데, 언제부터 일이 나에게 이렇게 불행한 것이 되어버렸지.
버티는 내가 그렇게도 싫었다. 주변 친구들 모두가, 서점의 모든 베스트셀러 서적들이, 티비 방송들이, 행복이 가장 중요하며 행복은 미뤄서 적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즐겨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내 모습은 실패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또 도망치듯 압구정에서 친구들과 치킨에 맥주를 먹으며 힘들었던 하루를 토로하고 있는데 문자가 울렸다. 이사님이 퇴근길에 커피 기프티콘과 함께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늘 꼬물꼬물 단단하게 열정적으로 일해주는 우리 혜민님 :) 진심으로 고맙고 애정 해요.’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버텨왔던 시간들이 누구에게는 ‘단단하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언젠가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필라테스를 한창 할 때, 강사는 항상 마지막 5개를 그렇게 강조했다. ‘다섯 개만 더!’ 그 말이 동작을 할 당시에는 악마처럼 느껴졌는데, 마지막 그 5개를 할 때 근육이 효과적으로 찢어져서 비로소 근육량이 늘 수 있다고 한다. 일하는 나는 그 버티는 시간을 너무도 당연하게 불행과 동일시했었다. 사실 동일시하는 것은 상황이 아닌 나인 줄도 모르고. 그 버티는 시간 속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기특한 일을 해내고 있는지도 모르고.
버티는 날이 있어야 달라진 내가 있고, 버티는 날이 있어야 훌쩍 떠나버리는 여행이, 책을 읽을 여유가, 친구들과 기울이는 소맥잔이 배로 달콤한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버티는 게 조금은 쉬워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버티는 나를, 그리고 버티는 어른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자꾸 잊어버리는 나에게,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버티는 것은 너무나도 기특한 것이니까, 이런 나를 기특해하며 우리 모두 내일도 버티며 잘 출근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