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감각으로 기록하는 명상✨

부록: 이 낯선 소리가 궁금해진 당신에게

by 사라는 요가 중

'현대음악과 국악, 가장 낯선 소리로 나를 만나는 때'(음악과 감각으로 기록하는 명상✨)를 끝까지 읽으면서도 여전히 현대음악과 명상의 관계가 아득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 역시 그날의 연주가 아니었으면 여전히 후배와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몰라요. 혹시나 이 낯선 세계에 한 발짝 발을 들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작은 부록을 덧붙입니다.


처음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가지 시선>을 음원으로 들으며, 유럽의 거대한 가톨릭 성당을 떠올렸습니다. 첫 곡은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주 화려하고 그 유리로 햇빛이 내리쬐어 성당 가운데 서 있는 나에게 따뜻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가 곡은 흘러가고 저는 깜짝 놀랐죠.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거든요. 보통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기에게 시선이 갈 것 같았지만, 저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와장창창 스테인드글라스의 창문이 깨지는 듯한 소리였거든요. 그러고 몇 년은 이 곡을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가 수련이 깊어지고, 명상이 무엇인가 생각하던 찰나에 다시 이 곡을 떠올렸습니다. 요가에서도 알아차림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수련이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지 않은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의 출근 걱정을 미리 하고 있지 않은지처럼 내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에서 벗어나 '지금 매트 위에서 수련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고 지금 여기로 돌아올 수 있는 상태가 바로 알아차림이에요.


이것을 다시 음악으로 가져온다면, 보통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무의식적으로 다음 음을 예측합니다. '도-레-미-파 다음엔 솔이 나오겠지'라고 예상하며 기대하고, 그것을 충족시킬 때 쾌감을 느끼죠. 하지만 메시앙의 음악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릅니다. 음악을 듣다 보면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어느 순간 그 예상을 포기하는 지점이 생겨요. 그렇게 되면 드디어 다음에 올 소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울리는 소리의 질감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게 바로 명상의 핵심인 지금 여기에 머무는 상태입니다.


조금 더 쉽게 얘기 해 볼게요. 보통 음악 감상이 내가 좋아하는 곡을 찾고 아는 음악을 다시금 들으며 쾌감을 느끼는 것이라면, 메시앙의 현대음악은 추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해요. 현대 음악에서 다음 음의 예측이 멈추는 순간 뇌는 분석을 포기하고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대신 귀는 예민해지죠. "방금 저 소리는 스푼이 유리에 부딪히는 것 같네'라며 소리의 질감을 느끼거나, "이 소리는 참 차갑다"와 같이 논리가 아닌 감각으로 소리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명상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명상을 해 보면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죠. 음악 속에서의 명상도 비슷합니다. 소리가 빵빵하게 홀을 가득 채울 때는 그 사운드에 압도되어 나의 생각이 끼어 들 틈이 없다가, 음이 사라지는 여백이나 잔향을 만난다면 그 틈으로 나의 감정들이 툭 튀어나옵니다. "저 소리가 사라지는 게 꼭 내 마음 같네"라며 음악이라는 거울을 두고 내 생각을 하나씩 비춰보며 그것을 직접 내가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상태. 그것이 제가 경험한 음악으로서의 명상입니다.


메시앙의 긴 호흡이나 정가의 느린 잔향을 듣고 있으면 소리와 소리 사이의 여백이 느껴집니다. 특히 정가는 음과 음 사이의 빈 공간이 아주 넓습니다. 한 음을 내뱉고 나서 그 소리가 공기 중으로 서서히 흩어지게 두는데, 그 소리의 꼬리가 길게 이어지는 동안 우리의 마음도 함께 차분해집니다. 그 꼬리에서 나의 생각과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해요. 그렇게 음악을 듣다 보면 나와 음악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집니다. 그저 음악과 함께 소리의 질감을 느끼고 나의 생각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세요.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메시앙은 왜 아기 예수를 이토록 날카롭고 강렬하게 표현했을까요? 어쩌면 2차 세계대전에 서서 그가 마주한 신성(神性)은 인간의 다정함을 넘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빛의 폭발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부드러운 위로보다는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압도적인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더 이상 이 어려운 곡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마치 창밖의 빗소리를 듣거나, 파도치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듯 듣고 흘려보내세요. 우리가 흔히 즐기는 음악 감상이 익숙함이 주는 안도감을 찾는 여정이라면, 현대음악은 낯섦이 주는 깨어있음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음악회가 끝나고 기억나는 멜로디가 하나도 없다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소란했던 머릿속을 비워내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얻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