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감각으로 기록하는 명상✨

현대음악과 국악, 가장 낯선 소리로 나를 만나는 때

by 사라는 요가 중

2024년 통영국제음악제는 현대 음악 공연이 두드러진 해였다. 그때 내가 궁금했던 연주는 상주음악가인 프랑스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사마유가 연주하는 메시앙이었다. 메시앙은 현대작곡가로,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이나 낭만 시대의 작곡가들의 음악과 사뭇 다르다. 전통적인 규칙을 깨고 조성에서 벗어나며, 낯선 선율로 새로운 음색을 탐구한다. "이것도 클래식이야?"라는 질문이 나올 만큼 현대음악 전공자에게도 쉽지 않다. 나 역시 주로 이론으로만 공부했고, 실제로 찾아다닌 적은 없었지만, 그때 어떤 실험정신이 발휘된 건지 덜컥 메시앙 연주를 예매했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려니 용기가 필요했다. 친한 피아노 전공 후배 한 명을 데리고 가려했지만, 현대음악은 어렵고 자기 취향이 아니라며 아무리 설득해도 후배는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삼고초려 끝에, 같이 보러 가면 티켓도 내가 제공하고, 맛있는 밥도 사주고, 집까지 태워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겨우 같이 가기로 했다.


아름다운 바다 위 음악당에서 열린 피아노 리사이틀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가지 시선>의 연주자 사마유는 2시간 동안 메시앙의 신앙심과 음악적 신비감을 작품에 녹여냈다. 이 곡은 기술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각 곡의 화성과 색채, 영적 의미까지 담아내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듯한 불규칙적인 리듬 속에서, 패턴이 반복되거나 점진적으로 변형되어 예측할 수 없었던 소리가 어느새 바다의 순환 같은 안정감 있는 흐름에까지 닿는다.


이처럼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흐름을 따라 음색과 소리의 질감에 집중하다 보면 듣는 사람은 서서히 곡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선율을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공간에서 어떻게 울리고 변화하는지에 주목하며, 단순한 감상을 넘어 사색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실제로 메시앙은 이 곡을 '기도와 묵상을 위한 음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연주자는 음악으로 수련을 하고 청중은 음악 속에서 명상을 하는 것이다.


연주를 끝낸 사마유는 홀에 있는 모든 이의 마음을 담은 큰 박수갈채를 받았고, 여러번의 커튼콜을 지나 마지막 커튼콜에서는 너덜너덜한 악보를 단호하게 덮으며 이제는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는 듯한 그 제스처까지 너무도 멋있었다. 메시앙은 아무래도 대중성과 선호도가 낮아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레퍼토리이고, 나도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당장 시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연주를 위해 그동안 어느 정도의 연습량과 체력이 필요했는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그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연주를 보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다시 메시앙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으며 문득 가장 한국적인 명상의 소리인 정가(正歌)가 떠올랐다. 정가는 조선시대 양반 계층이 즐긴 문인 음악으로, 대표적으로 ‘동창이 밝았느냐~’ 하는 시조가 있다. 템포가 느리고 우아하며, 절제된 악기 편성 또는 스스로의 호흡에만 의존하고, 주로 자기 수양과 정신적 수련을 위해 부른다.


정가와 메시앙 음악에는 몇 가지 공통적 특징이 있다. 연주자의 완전한 집중과 청중의 몰입을 통해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하며, 단순한 청각적 경험을 넘어 내면적 몰입과 사색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선율 대신, 한 음의 떨림이나 공간의 소리가 사라진 뒤 남는 여백과 잔향에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다. 두 음악의 호흡은 소란스러운 마음을 멈추고 소리 자체의 질감에만 온전히 머물게 한다. 즉,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경험의 구조는 유사한 것이다.


같이 갔던 후배에게 다시 현대음악 연주를 가겠냐고 물으면 여전히 아니라고 한다. 많은 시간 집중을 요구하는 음악이 피곤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음악 전공자는 입시 중심으로 연습을 시작하기 때문에 현대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줄어든다. 연주 경험이나 지식이 있더라도, 청각적으로 직접 경험한 시간이 적으면 낯설게 느껴지는 법이다.


귀에 감기는 명쾌한 음악을 선호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대 음악은 재미없다는 후배의 말 역시 당연하다. 우리는 늘 음악을 이해하고 예측해왔다. 하지만 이해하는 음악만 있는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 음악도 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정돈하고 싶은 어느 날, 필요에 따라 후배 역시 언젠가 이 소리를 다시 떠올릴지도 모른다. 가장 낯선 소리로 나를 만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