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Mar 10. 2019

영화 <캡틴 마블(2019)> 리뷰

4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다시 만나요

* 스포일러가 포함된 후기입니다.



여성 단독 주연의 MCU 영화가 처음 등장했다. 그래서인지 세상이 이래저래 시끌벅적하다. 페미니즘과 결부시켜 이 영화를 읽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는 것은 물론, 푸른 엘사 드레스를 입던 소녀가 캡틴 마블 코스튬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영화를 쇼트 별로 분석하며 '페미니즘적인지 아닌지를' 굳이 따지거나 검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린 시절 향유한 애니메이션이 대체로 '마법소녀'에 한정되어 있었던 것과는 정말이지 차원이 다른 세상을 열어젖힌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 영화의 페미니즘적 가치는 충분하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여성 캐릭터란 오로지 '마법'이라는 초월적 힘을 부여받아야만 하고 늘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야만 했던, 간신히 떠오르는 예외를 꼽자면 디즈니의 '뮬란'정도에 불과했던, 그랬던 시절이 비로소 저문다. 둔탁한 타격감, 빠른 주먹과 돌려차기를 감각하자면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때가.


그러한 이유로 나는 <캡틴 마블>에 대해 페미니즘 리뷰를 남기고 싶지 않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히어로를 다루는 영화이고, 그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는 것이 더 나을 거라 생각한다. 더불어, 내가 캐럴(브리 라슨)이 자신을 정의할 때 여성이라는 요소를 큼지막하게 내세울 것 같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캡틴 마블>은 영리하다. 마블은 십여 년 전 <아이언맨>으로 MCU의 시작을 알린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히어로 영화가 나왔기에 관객들이 틀에 박힌 서사 구조에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졌다는 것을 안다. 지금껏 마블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통해 '미성년자 히어로'를 등장시켰고, <앤트맨> 시리즈를 통해 '범죄자 출신 히어로'를 등장시킨 바 있다. 주인공의 속성을 비트는 것마저 이젠 식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은 서사 구조를 비트는 방법을 취했다.


캐럴은 자신의 이름은 물론이요 기억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고, 기억 상실증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대단히 불안정한 정체성을 지닌 상태이다. 그러나 그에겐 이미 부여된 힘이 있다. 섬세한 조종은 불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분명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힘이. <캡틴 마블>의 서사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 구조를 완벽하게 회피해 갔다고 하긴 어렵겠으나 분명 기존의 클리셰와는 다른 차별점이 있다. 캐럴이 지닌 힘의 근원을 추적해 나가는 역행적 구조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기억을 되찾은 이후다. 탈로스(벤 멘델슨)가 블랙박스 음성을 들려준 이후 <캡틴 마블>의 전개는 지나치리만큼 평면적으로 변했다. 대사를 통해서만 언급된 그녀의 '본래 성격'은 너무도 급작스레 돌아오며 (마치 6년 동안 쌓은 성격은 '진실된 것'이 아니고, 그녀의 일부조차 될 수 없다는 것처럼), 슈프림 인텔리저스와의 대립은 허망할 정도로 단순하게 편집된다. 물론 영화의 메시지는 강력하지만 연출은 전혀 세련되지 못하다. 심지어 힘을 잃은 순간 캐럴과 대립하는 욘 로그(주드 로)와 그 부하들이 하는 일이라곤 슈프림 인텔리전스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뿐인지라 히어로 영화에 필요한 갈등 극복, 주인공의 각성 서사가 지나치게 빈약해졌다. 이것은 캐럴이 힘을 조절할 수 있게 된 순간, 관객이 느꼈어야 할 카타르시스를 상당 부분 앗아가는 데 큰 공헌을 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캡틴 마블>의 후반부가 모조리 엉망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 구스를 활용한 장면은 영화 후반부 리듬에 힘을 실어주는 일등공신이었고, 많은 장면이 유효하게 작용했다. '많은 장면'이라 한 것은, 유감스럽게도,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캡틴 마블>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는 기존 영화의 조연인 닉 퓨리(새뮤얼 L. 잭슨)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조연과 쿠키 영상을 다방면으로 활용하며 기존 MCU 영화와의 접점을 자아내는 방식은 언제나 감탄을 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닉 퓨리의 젊은 시절, 외계인조차 믿지 않던 시절, 조금은 촐싹이는 듯 보이는 모습까지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쏠쏠한 재미였다. 하지만 구스가 그의 눈을 할퀴는 순간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기존 조연 캐릭터를 완벽히 개그 캐릭터로 '소비'하는 데에 그쳤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인류의 소멸을 바라보면서도 일방적인 절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캐럴에게 연락을 취할 만큼 판단력이 뛰어나고 객관적이었던 지도자로 묘사한 조연 캐릭터에게 줄 수 있는 예우가 이것뿐이라면 나는 다소 실망스럽다. 아무리 구스가 플러큰이라는 외계 종족이라 설정되었고 그것이 영화 속에서 밝혀졌다 하더라도, <캡틴 마블>이라는 하나의 시각 매체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히 웃음이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나는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다시 만날 캐럴, 캡틴 마블을 기대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선례가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다듬어진 캐릭터로 만날 수만 있다면, 캐럴만큼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히어로도 없지 않겠는가. 완벽하진 않지만, 이번 영화에서 캐럴은 이미 우리가 기댈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히어로라는 것이 명확히 증명되었다. 그뿐인가? 캐럴이 선한 이를 위해 자신의 힘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마저 정확하게 짚어주었으니, 내가 할 일은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4월 개봉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2006)>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