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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r 28. 2019

영화 <노트북 (2004)> 리뷰

사랑이 있기에 시간을 거스를 수 있었다는 회고

나는 지금껏 내가 로맨스 영화에 쥐약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닌가 보다. 나는 로맨스 코미디 장르를 볼 때면 꼭 한 번씩 경험하게 되는 공감성 수치에 민감했을 뿐, 로맨스라는 장르를 멀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노트북>을 다 본 후 내가 느낀 첫 감상이었다.


나는 이제야 처음 보았지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이 영화를 언급하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친구 중 한 명은 '사랑에 빠졌을 때' 보기 좋은 영화라고 덧붙여 주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은' 상태로 보긴 했지만, <노트북>은 다소 통념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영화적인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랑이야 사람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 한다지만, 열병 같은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의심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영구적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일주일 남짓한 사랑이 죽음으로 끝맺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사랑의 지속성과 순수성이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진정한 동료일 수 있겠느냐고. 그것을 누가 알겠느냐만은, <노트북>은 앨리(레이첼 맥아담스)와 노아(라이언 고슬링)를 비추며 외친다. 열일곱에 시작하여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랑이 여기 바로 이곳에 있노라!

 

극적인 순간은 언제나 불가능성과 금기 앞에서 빛을 발한다. 그래서인지 노아와 앨리 사이엔 여러 격차가 존재한다. 자본주의 체제 하의 경제적 격차,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실질적인 신분 차이, 그리고 십 대라는 나이가 부르는 어른들의 간섭 -그때의 사랑은 결국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조언과, 앨리의 어머니가 빼돌리는 노아의 편지- 그리고 여름철 휴가라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


10대의 첫사랑은 그 제약 앞에서 무너진다. 어차피 유통기한이 너무나 짧은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안다. 그러나 그것을 이어 보고자 편지를 쓰고 또 기다린다. 물론 이러한 노력 역시 성공까진 너무나 험난하다. 편지는 앨리에게 닿지 않았고, 앨리의 7년 기다림은 본질적으로 노아 없이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앨리의 결혼으로 엇갈리기 직전, 노아의 집념과 앨리의 한 줌 희망은 만날 수 있었다.


언뜻 두 사람의 사랑은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월은 두 사람을 바꿔놓았고, 또 다른 이들과의 인연들이 발생하였으므로.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앨리에겐 론 하몬드(제임스 마스던)가, 노아에겐 마사 쇼(제이미 브라운)라는 인연이 생겼다. 앨리와 노아가 서로를 선택한다면 론과 마사는 끈 잃은 연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떤 선택은 필연적으로 상실을 불러온다. 두 사람이 과거 속에 묻힌 사랑을 캔다면 현재의 사랑을 잃을 것이고, 현재의 사랑을 유지한다면 첫사랑의 흔적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앨리와 노아는, 그리하여 첫사랑이라는 열차에 다시금 탑승한다. 현재의 사랑을 과거의 것이 되도록 시계를 돌리는 편을 선택했다. 그러자 7년이라는 공백은 단숨에 사라진다. 물리적인 시간의 흔적은, 사실 앨리의 어머니가 편지를 가로채지 않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 공백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It was us."


<노트북>은 여름휴가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연상시키고, 여성에게 첫눈에 반한 남성이 상대 여성에게 순수한 사랑을 보낸다는 점에서 <빅 피쉬>가 겹쳐 보인다. 더불어 알츠하이머가 걸린 할머니와 그를 떠나지 못하고 간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쩐지 <아무르>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요컨대 <노트북>은 사실 크게 특별한 영화라 칭하긴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뻔하다 하더라도 우리가 또다시 울고,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얼까. 단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때문일까? 알츠하이머라는 병과 순애보적 사랑의 결합만이 낳을 수 있는 가장 처절하게 순정적인 사랑을 목격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극화되었다고 해도, 어쨌든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여서?


어쩌면 모든 문장이 정답일 것이나 나는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노트북>이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가 이 클리셰적인 이야기에 다시금 승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대 과학으로도 정복되지 않은 불가능의 영역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사랑이 있는 한 우리는 시간을 거스를 수 있고 삶을 함께 건널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실만이 우리가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메울 수는 없을지라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메울 수 있는 그 말만이 ─ 당신을 사랑해,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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