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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an 13. 2019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리뷰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그리는 인물들


* 아직 한국에 정식 개봉한 작품이 아닌 만큼 최대한 스포일러를 배제하려 노력하였습니다. 트레일러에서도 확인할 수 있거나, 역사적으로 동일한 지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다소 있으나 이 부분도 불편하시다면 읽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2018)는 더 랍스터(2015), 킬링 디어(2017)를 감독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신작이다. 전작인 킬링 디어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섬세하게 수놓아진 소품, 적절하게 계산된 화면의 앵글과 화려한 음악의 사용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어디 그 뿐인가. 감독의 장기인 인물 간의 팽팽한 관계 묘사 역시 건재하다. 다만 차이를 꼽는다면 작품의 분위기가 킬링 디어에 비해 다소 가벼워져 보다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작이 신화적 요소를 차용하여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더 페이버릿은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유머 코드를 군데군데 배치한 덕이다.

작중 배경은 영국의 앤 여왕 통치기로,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말년인 1710년 경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 종종 애용되고 조명 받던 튜더 왕가의 여인들(메리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메리 스튜어트, 앤 불린 등) 혹은 빅토리아 여왕을 비껴나간 이 선택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란티모스는 앤 여왕(올리비아 콜먼) 뿐 아니라 그녀의 오랜 벗이자 그 이상의 관계인 말버러 공작부인(레이첼 와이즈), 새로이 궁에 들어온 아비게일 애섬(엠마 스톤)을 무대 위에 올린다. 그런데 그들의 관계가, 그들이 살아나가는 시대가 어째 이상하다. 한 편에는 프랑스와의 전쟁이 계속되는 나라 외부의 사정이 있는데 우스꽝스러운 거위 달리기 시합 앞에서 박수를 치는 왕궁 내의 귀족들이 공존한다. 이렇듯 평범치 않은 시대상은 인물을 통해 구체화된다. 때로 과해 보이는 연극적 분장과 과장된 인물의 행동은 분명 의도적으로 삽입된 것이리라. 그뿐인가? 화면의 원근은 종종 극단적으로 왜곡된다. 영화 내에서 카메라 렌즈는 퍽 용감하다. 고요히 궁정 내부를 고발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이런 질문이 남을 것이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상황을, 최고 통치자인 앤은 어떤 방법으로 타개하려 하는가? 안타깝게도 그녀에겐 별 다른 수가 없다. 그녀 역시 우리가 기대하는 왕의 모습을 상실한 지 오래이므로. 재위 말년에 이른 그녀에게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레임덕 증상이다. 이는 영화 속에서 그녀의 다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으로도 가시화된다.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 할 앤은 누구보다도 자주 쓰러지고, 넘어지며, 카메라는 하이 앵글로 그녀의 모습을 묵묵히 찍어낸다. 이처럼 이야기를 이끌어 갈 주체성이 부족한 것처럼 묘사되는 앤 여왕 앞에서 카메라는 화면을 전환한다. 그녀의 주변부로 자신의 시선을 넓힌다. 이는 일종의 숙명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앤의 최측근인 말버러 공작부인과 아비게일의 관계 변화는 이 영화의 백미다. 둘의 끊임없는 긴장은 권력을 향한 탐욕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더 페이버릿은 그 애매한 지점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그렇기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목을 어찌나 잘 지었는지 절로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다. The Favourite.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것. 시대를 반영한다면 아마도 총애한다는 서술어로 살짝 바꾸어도 될 이 단어는 비단 여왕의 총애자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말버리 공작부인이 가장 총애하는 대상은 무엇인지, 아비게일에겐 무엇인지, 그리고 그 ‘다름’이 영화 내에 어떤 활력을 불어 넣는지를 확인하고 읽어 나가는 것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재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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