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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Apr 26. 2019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리뷰

히어로의 숙명이여, 이젠 안녕

※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불편하신 분들, 아직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기나긴 여정이 끝났다. 히어로들이 한 두 명이 아닌 데다가, 다루어야 하는 인피니티 스톤도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러닝타임은 무려 세 시간에 달한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그 세 시간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을 때우는 팝콘 무비로는 전혀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훌륭하다거나, 완성도가 높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거리게 되리라.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서사의 허점과 부단히 구축된 캐릭터 설정의 붕괴에 기반한다. 특히 전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에서 보았던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의 모습은 많은 관객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 안겨 준다. 더군다나, 시간 여행을 다루는 보통의 영화와 달리 '멀티 유니버스' 개념을 도입한 서사 구축은 영화 속에서 제대로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양 어색해진다. 영화는 코믹스와 달리, 제아무리 180분가량의 시간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결국 프레임 안에 '한 우주'만을 담을 수밖에 없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코믹스와 영화는 질적으로 다른 매체이고, 아무리 유사한 세계관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더라도 시간적 프레임을 운용할 때엔 매체에 맞는 전략을 운용했어야 했다.


물론 다양한 장점도 많다. 전작을 오마주한 수많은 대사들은 때로 웃음을 자아냈고, 눈물샘을 자극했으며, 추억의 한 단면을 비췄다. 게다가 영화의 뒷이야기를 보는 듯한 유쾌한 장면들도 적지 않게 삽입하였는데, 이는 두터운 마블 팬층에게 어필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하러 온 관람객에게도 부담스럽지 않게 작용하여 일거양득의 효과를 낸다. 아마 팀업 무비인 어벤져스 시리즈만 본 사람이라 해도 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졌으리라. 다양한 히어로를 모두 다뤄야 하고, 특정 캐릭터들의 '은퇴식'까지 묘사를 해야 했던 작가들의 고뇌와 노고를 치하해야 하는 순간들이 영화 내에서 번뜩이곤 했다.




사실  많은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의 핵심이었던 타노스(조시 브롤린)를 조명해 보고 싶다. 모든 일의 원흉이었던 그 악역! 영화 속 히어로들은 물론,  팬마저도 곧잘 "Bring me Thanos!"를 외치게 만든 어둠의 군주 말이다. 그는 2023년의 모습과 2014년의 모습으로 크게 두 번 등장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두 타노스는 모두, 이번 영화에서 같은 대사를  반복한다. 그것은 바로 "I am Inevitable," 이다.


타노스Thanos라는 이름은 어원 자체에서 "불멸"을 암시한다. 그런 이름을 가진 타노스가 말한다. 자신에 대해 'inevitable,' 이라 표현하는 것은 제법 흥미롭다. 'inevitability'라는 명사로 정의 내리지 않으며, 불가항적이고 필연적이라는 형용사로서 자신을 수식한다는 것이. 그는 히어로에게 "불가항적인 불멸" 혹은 "필연적인 불멸"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그가 신이 되고자 하였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인피니티 스톤을 손에 넣고 건틀렛을 움켜쥐지만 그것을 영원히 누리고자 하지 않는다. 타노스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움직이는 자였고, 그 과정에서 히어로들과 마찰을 빚는 악역이다.


"Bring me Thanos!"라는 히어로들의 절규는 그렇다면, 불멸을 달라는 외침이었던가? 전혀 아니었다. 파괴자를 자신의 앞에 대령하라는 의미다. 그들은 타노스의 말마따나 '불가항력에 가까운 불멸'을 자신의 손으로 불러오고 또한 찾아간다. 타노스는 그 자체만으로, 존재와 이름 모두에서 읽을 수 있듯, 히어로들에게 일종의 '숙명'이다. 안타깝지만 영웅은 난세에서 난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평화 속 히어로, 적이 없는 히어로는 애당초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타노스는 히어로들의 숙명을 고스란히 의인화한 존재다. 신념 앞에서 부딪히는 신념이요 위대한 한 명으로 꺾을 수 없는 너무나도 비대한 우주의 운명으로써. 따라서 인피니티 스톤을 타노스의 손에서 훔쳐낸 토니 스타크는 이렇게 대꾸한다. "I am Iron Man." 거부할 수 없는 숙명 앞에 놓인 순간, 인간은 누구나 영웅이 될 기회를 갖는다. 타노스라는 숙명 앞에서 그는 한 명의 개인, 토니 스타크일 수가 없다. 그는 히어로여야만 한다.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걸 수 있는 영웅. 그래서 그의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개인적으로, 영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여러 가지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최소한 아이언맨에겐 최대한의 예우를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를 완성시킨 하나의 중요한 대사도 언급해야겠다.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Avengers! Assemble, "는 그들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밝혀주며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분명히 매듭짓는다. Avenge에서 따온 그들의 팀명을 되짚어보자. 그들은 어벤져스Avengers이지 리벤져스Revengers가 아니다.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모두 '복수'에 해당되지만, Revenge는 정의보단 개인의 복수에 초점을 맞추며, 보복성이 짙은 단어이다. 내가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영화의 초반부에선 승리를 거둘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영화 후반부의 타노스는 2014년의 타노스로, 히어로들이 기억하는 2023년의 타노스와 외적으로는 다르지만 그들이 대항하는 것은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 속 타노스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미 육체적으로는 다른 타노스를 엄벌하는 것이 유의미한 이유는 그의 극단적 공리주의라는 신념이 유령처럼 지상을 떠돌기 때문이다. 그래서 캡틴 아메리카는 외쳐야만 한다. 어벤져스라는 팀명을. 정의심에서 비롯된 정당한 복수의 시작을 알리기 위하여.




……겨우 한 번 본 영화를 이렇게 짤막하고 단순하게 리뷰하는 것이 옳은 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점도, 아쉬운 점도 많이 남은 영화였기 때문에 더더욱. 하지만 어쩌겠는가.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영화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후기를 적으며 맘을 달래는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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