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May 04. 2019

영화 <더 파티(2017)> 리뷰

그야말로 '옹골찬' 영화를 원하는 당신에게



영화 더 파티 (2017)는 '드라마,' '코미디'로 분류되는 샐리 포터 감독의 장편 영화이다. 사실 나는 긴 영화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오로지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마음에 들어 보게 되었다. 고작 70분 남짓이라지만 어쩐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더 파티>는 로만 폴란스키의 <대학살의 신(2012)>처럼 오로지 '집'이라는 한 공간에서 진행되며, 우리가 흔히 영화 속에서 기대하는 거대한 사건 사고 없이 주인공들의 입담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심지어 <더 파티>는 흑백이기까지 하니,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처음부터 강수를 둔다. 영화의 오프닝은 '파티'라는 제목에 맞게, 홈파티에 초대된 누군가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심상치 않다. 문이 열리자마자 총구를 들이대는 여자가 등장하니까. 이 강렬한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영화는 관객들의 시선을 파티 속으로 집중시킨다. 그리고 묻는다. 왜 여자는 당신에게 총구를 겨누어야만 했을까?


<더 파티>라는 제목은 꽤 흥미롭다. 이 영화는 다양한 정치/철학적 레퍼런스를 내포하며, 주인공 자넷(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이 장관 자리에 오른 것을 축하하는 홈파티를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축하 자리와, 정당을 동시에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자넷은 '정당정치를 통한 변화를 신뢰하는'인물로 그려지고, '이상주의자'로 몇 번이고 직접적으로 언급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더. 내가 영국 정치엔 영 깜깜하기 때문에 각 인물들이 어떠한 정당, 혹은 정치인을 상징하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었지만 인물들의 행동으로 짐작컨대 무언가의 레퍼런스가 있을 거라 확신한다.


여하튼, 이 영화엔 위에서 언급한 파티의 주인공 자넷을 비롯한 엔 일곱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자신들의 사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특히 작위적이지 않은 대사를 통한  자연스러운 상황 표출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에 더하여, 인물들의 엮이고 엮인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는 것 역시 흥미롭다. 가장 불안했던 관계는 끝까지 이어질 것인가? 가장 안전하게 보였던 관계는 어떨까? 파국으로 흘러가는 관계, 혹은 절망 속으로 떨어지는 인물이 있진 않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영화는 자신만의 속도로 우리를 인도한다.



영화를 보는 초반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 예컨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스토커 (1979)>를 볼 때 나는 주축이 되는 세 남자의 얼굴을 끝까지 구분하기 어려워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 자넷과 마사(체리 존스)가 헷갈렸고 캐릭터들의 간단한 이름 역시 구분이 어려웠다. 하지만 영화는 영리하게도, 각 캐릭터마다 겹치지 않는 성격과 상징되는 소품들을 구석구석 배치하였고 그것을 작중 전개 요소로도 알차게 사용하였다. 때문에 마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처럼 인물을 공들여 소개하는 초반 몇 분이 다소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졌음에도, 곧 그에 따른 달콤한 보상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7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긴 투쟁이라도 하듯 열성적으로 마음을 빼앗겼다. 때로는 초조해하며 인물의 시선을 따라갔고 때로는 궁금해하며 고개를 기웃거릴 수 있었으니까.


위에서 말했듯 영화의 시간이 짧고,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폭로전'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 매개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영국 특유의 블랙 유머가 대화 군데군데에 난입하며, 시니컬한 에이프럴(패트리시아 클락슨)의 태도는 이상하게 시선을 잡아 끄는 구석이 있다. 서양 의학은 글려먹었다고 단언하는 고프리드(브루노 강쯔)를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영화가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1957)>의 팬이라면 <더 파티>를 약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만큼 정석적이고, 뺄 구석이 하나 없는 영화를 보는 것 역시 영화 감상의 즐거움이지 않을까. 왜 자넷은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어야만 했는가. 당신이 예상한 반전이 과연 반전의 전부였을까. 멀쩡해 보이는 사회 엘리트 계층의 폭로전은 얼마큼 고상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한 번쯤 경험해 보시길 바란다.



★★★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톨킨 (2019)>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