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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12. 2019

영화 <톨킨 (2019)> 리뷰

전기영화로써의 예우가 담긴, 그러나 아쉬운

아직 한국에 정식 개봉한 작품이 아니며,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라는 것을 밝힙니다. 전기영화의 특성상 JRR 톨킨의 삶을 아시는 분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사견이 많이 언급되므로 주의해 주세요!



JRR 톨킨!  세상에, 그의 전기 영화가 개봉하였다. 영화를 보기 전엔 아주 조금이라도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러기엔 너무 어려웠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이 내 대학 진학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만큼 나는 톨킨을 좋아하니까. 더군다나 그의 일생은 군데군데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어떠한 삶의 일면이 영화화되었을지조차 너무 궁금했다. 이디스와 만났던 청춘의 한 순간일까, 세계대전에 나섰던 순간일까, 본격적으로 판타지 문학을 집필하기 시작한 시기일까, C.S. 루이스와 교류를 하던 시기일까……. 하지만 호기심을 꾹 누른 채, 트레일러 하나 보지 않고서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저 니콜라스 홀트와 릴리 콜린스가 캐스팅되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만 듣고서.


결론부터 말해보자. 나는 이 영화가 "사두 용미"에 가깝다고 본다. 오프닝으로 꼽은 솜 전투는 어린 시절 회상과 연결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으며, 초중반부의 이야기는 어린 톨킨의 캐릭터를 관객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지나치게 판타지 문학과 연결시킨 연출은 노골적이었고, 스스로를 판타지 작가라기보다는 언어학자로 정의하는 것을 선호했다던 그의 생전 모습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결말만큼은 퍽 마땅하고 정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주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모두가 예상할 만한 장면을, 그리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톨킨을 삽입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적 욕망을 채워준다고나 할까. 나는 그 장면만으로 이 영화가 가치롭다고 생각하기야 하지만, 어쨌든 영화 <톨킨>은 전반적으로 안일하다.


물론 이런 내 평가는 지나치게 박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아름다운 영국의 자연 풍경을 조금 더, 그의 글 『호빗』을 떠올리게끔 잡을 수는 없었을까? 이야기를 전개할 때, 어린 시절을 더 세련되게 다듬을 순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솜 전투를 오프닝으로 삼은 것이 이 징조였을지 모른다) 특히나 연기력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을 떠올려 보면 각본과 편집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영화의 우선순위가 흐트러졌다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언어학자로서의 톨킨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판타지 문학의 거장 톨킨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이디스 브랫과의 달콤한 연애 시절에 집중하고자 함인지, 친구들과의 우정이 산산조각 난 세계 1차 대전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한 작가의 세계는 인생의 총체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므로. 그러나 이야기는 산재해 있다. 그 모든 것을 잇는 힘이 너무도 부족하다. 영화 후반부의 시도는 훌륭했지만, 중반부까지의 연결이 너무도 느슨해 자칫 지루해 지기 쉬운 구성이었다.


물론 영화의 대본을 집필한 작가의 노고를 이해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사실 JRR 톨킨이라는 개인의 인생사에서 극적으로 드라마틱했던 사건은 찾기 쉽지만, 그것을 살아낸 이의 인품이 드라마 퀸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예컨대, 톨킨이 몸담았던 10대 청소년의 사교 클럽이 최소한 영국 드라마 '스킨스'를 뽑아낼 만큼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는, 그런 뜻이다. 더군다나 아무리 19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것을 감안해도 놀라우리만큼 작위적인 장면과 대사들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톨킨의 삶에 '초대받았다'는 감각만큼은 정확히 전달해 준다. 그가 얼마큼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를.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그가 어떻게 상상력을 키워낼 수 있었을까.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에서 꿈을 꾸고, 메모하고, 자신의 언어를 확립하며 그 안에 뜻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감격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한 번쯤 해 보았을 장난 중 하나로는, 나만의 비밀 글자 만들기가 있지 않을까? 일기장이라던가, 친구들과 주고받는 쪽지를 타인이 읽지 못하게 하려는 작은 꼼수들 말이다. 이런 기억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다빈치도 거울 글자를 만들지 않았던가.) 나는 그때 꽤 진지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그 당시의 내가 했던 고민들을 기억한다. 내가 만든 일종의 기호와 한글이 1:1로 대응된다면 새로운 문자라고 부르는 데에 별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부족한 문자라는 생각에 잔뜩 투덜댔던 순간 따위를. 그리고 몇 주가 지나지 않아 모두 폐기했었더랬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내게 톨킨은 숨 쉬었던 전설처럼 보인다. 언어가 생동하려면 단순한 소리여선 안되고,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기술적인 체계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배경까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실현시킨 사람이니까. 인공적으로 하나의 추상적인 세계를 흔들림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 짝이 없다. 이 영화는 그 부분을 본격적으로 파고들진 않았지만, 얕지 않게 묘사함으로써 내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었다. 조금 더 인간적인 톨킨을 부각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야 하지만, 전쟁통에 휘말렸던 그의 청년기를 다루었으므로 어쩔 수 없다고 납득하려 한다.


사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지나치게 직접적인 주제 의식 전달이었는데, 캐스팅만큼은 어디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훌륭했던 것 같다. 아역 배우와 성인 배우 캐스팅은 자연스러웠고, 모두의 연기력은 출중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선 감정이 먹먹하게 차오르고, 느리게 고조되는데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지금 이 배우들이 10년, 20년쯤 후에 톨킨의 중장년을 그린 또 다른 전기영화에 출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영화의 후반부가 초중반부에 비해 완성도가 높았던지라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이 영화를 추천하느냐고 물으면 조금 망설일 것 같다. 전기영화로써의 매력이 크게 담기진 않았고 한 인물의 성장기라 하기에도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톨킨의 팬이라면 한 번쯤 보지 않겠느냐고 권하고 싶으며, 주조연 배우의 팬이라면 몇 번이고 봐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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