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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20. 2019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1994)> 리뷰

억겁의 영원으로 채울 수 없는 갈증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라는 책을 언제 읽었던가. 책에 미쳐있던 중학교 즈음이었나, 시험 앞에서 달아나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온 것은 분명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던 때였다. 그런데 나는 1권 이후를 읽지 못했는데, 항상 2권 이후로는 누군가가 대출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찾아보니 『뱀파이어 연대기』시리즈는 첫 번째 이야기가 가장 완성도가 높으며, 문학적으로 가치롭다고 한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약간의 향수를 느끼게 된 건 어쩌면, 1권만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여기서 한 번 더 꺼내보자면, 앤 라이스가 작품을 쓰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딸의 죽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품 속엔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녀 뱀파이어 클라우디아(커스틴 던스트)가 있다. 그러니까 앤 라이스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뜬 어린 딸에게 아이가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행복한 미래를 주는 대신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쳐진 존재를 창작해낸 셈이다. 인간이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자신을 이해해 줄 존재를 갈망하며, 천진하여 무시무시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뱀파이어를.


요괴에 관한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넘쳐난다. 간단히는 유령, 악마 따위가 있을 것이며 조금 더 복잡하게는 뱀파이어나 구미호, 늑대인간 등을 들 수도 있으리라. 그들은 모두 인간을 벗어난 존재들이다. 동시에 인간에게 인간다움을 질문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뱀파이어는 일종의 '존재의 과잉'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들은 죽음을 경험하였으면서도 삶의 종단에 이르진 못한 채,  극대화된 육체적 쾌락과 맞닿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통 속의 흡혈, 인간을 뛰어넘는 신체 능력과 에로티시즘은 뱀파이어를 그리는 수많은 작품에서 반드시 담아내는 특징들이다. 앤 라이스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의 일부를 극대화시키고 죽음만큼은 부여받지 못한 존재. 그리하여 인간이었던 시절을 자꾸만 돌아보고 그리워하는 비인간들. 클라우디아는 그중에서도, 어린 모습으로 고정된 시간을 감내해야 하여 그 간극을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다. 레스타(탐 크루즈)가 끊임없이 인형을 선물해 줄 때 클라우디아는 묻는다. 매번 같은 날에 선물을 주는데, 그 날이 자신의 생일이라도 되느냐고. 그리고 카메라는 산더미처럼 쌓인 인형을 보여준다. 클라우디아는 그렇게 많은 날을 살았음에도 여전히 소녀의 모습으로 머무른다. 살아있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지만 그는 숨 쉬는 인형에 지나지 않았다. 자라지 않고 정체된.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뱀파이어 연대기>에서는 뱀파이어가 그리 '타자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서사의 중심에  오고, 인간을 사냥하는 데에서 그친다. 다시 말해 뱀파이어 헌터와 같은 이들이 등장하지 않으며, 그들은 십자가나 마늘을 이용한 '퇴치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더불어 클라우디아의 욕망 역시 인간 시절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성장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분노, 혹은 좌절에 가깝다. 심지어 그들의 시간은 루이의 목소리로 녹음기에 담겨 일종의 영원(혹은 재생산)을 보장받으며,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루이의 이야기는 영화에 담겨 우리의 눈 앞에서 펼쳐진다. 이처럼 거듭된 미디어의 중첩은 존재의 과잉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이끄는 주요 뱀파이어 중 한 명인 루이(브래드 피트)는 결핍과 인간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때문에 그는 레스타, 클라우디아와 결이 다르며 관중과 가장 먼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자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역시 뱀파이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루이는 결국 인간으로, 죽음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경계를 떠도는 자로 표상된다. 여전히 레스타보다 온유한 그의 모습은 일말의 섬뜩함을 눈감을 수 있게끔 한다.


이미 지옥에 떨어진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그의 삶은 그렇게, 아슬아슬한 허상으로 가득하다. 영화는 그것을 정말이지 완벽하게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거대한 저택, 빛나는 식기, 화려하기 짝이 없는 옷과 광기로 물들여진 연극 무대……. 차분하게 정돈된 화면의 빛깔, 수도 없이 등장하는 황금빛 무언가는 뱀파이어의 삶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과 더욱 강렬하게 대비되는 뱀파이어의 고뇌를 비춘다. 괴이하게 늘어난 삶 속에서 그들이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종족과의 연대/유대뿐인 듯한데, 그것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레스타의 인도에 따라 흡혈을 시작했던 루이가, 영화의 끝자락에선 인공적인 빛에 적응하지 못하는 레스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한 것을 우리는 성장이라 칭할 수 있는가?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순응이지 않을까. 정지된 시간 속 생존하는 존재에게 성장이란 진정으로 가능한 것이던가. 이 질문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조금 더 제 몸을 부풀린다.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문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인정받은 소설을 기반으로 하기에 서사적 완성도에 있어선 크게 어색한 점이 없다. 뿐만 아니라, 톱클래스의 배우들이 모여 명연기를 펼치니 연기면에서 흠을 잡을 곳도 없다. (특히 탐 크루즈의 변신은 놀랍기까지 하다.) 더욱이 클라우디아를 맡은 어린 배우마저 신들린 연기를 펼치고, 소품들까지 정성껏 마련된 것이 눈에 들어오니 이런저런 면에서 모두 만족스럽다. 물론 90년대 작품이기 때문에 2019년의 눈으로 보면 아쉬운 연출, 아쉬운 특수 효과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정도의 아량을 베푸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은 수작이라 부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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