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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un 11. 2019

영화 <맥베스 (2015)> 리뷰

원작을 존중한 각본과 탁월한 영상미가 만났을 때

영미권에서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만큼, 또한 그의 글이 애초에 희곡이었던 만큼, 많은 이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무대 위에 올렸고 또한 스크린 위에 담았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로미오와 줄리엣 (1968)>이겠지만, 나는 BBC 드라마 <할로우 크라운/텅 빈 왕관 (2012)>을 가장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벤 위쇼의 리처드 2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하튼 영화 <맥베스(2015)> 는 셰익스피어의 소위 '4대 비극'이라고 불릴 만큼 유명하고 또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이미 오슨 웰즈와 로만 폴란스키가 영상화한 바 있다. 그러나 본디 명작이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해석되기 마련이며, 그렇게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부여받는 법 아니던가. 21세기, 저스틴 커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2015년 맥베스는 원작의 장엄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가져온다.


" 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Hover through the fog and filthy air.
선한 것이 악한 것, 악한 것이 선한 것.
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을 맴돌아 다니자. "


원작의 황량한 황야를 옮겨온 스코틀랜드의 풍경은 압도적이다. 한기가 서린 위엄과 어둠은 극을 지배하는데, 이러한 스코틀랜드는 올해 초 내가 본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와 또 다른 모습이다. 어느 쪽이 '진짜' 스코틀랜드인지를 가릴 생각은 없으며, 내가 감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다만, <맥베스> 속의 스코틀랜드는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극본 속 장소,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속에서 관념화된 장소를 훌륭히 재현해낸다. 지나치게 목가적이거나 낭만화된 장소가 아니라, 전쟁과 삶이라는 결투장에 걸맞은 모습으로써.


맥베스는 본디 비극이지만, 특별한 적이 상정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비극적인지도 모른다) 험준한 산맥이 눈 앞에 놓여 있으며 마녀들이 극 중에 등장하지만 그네들은 절대적인 적이 아니다. 맥베스는 근본적으로 자연과 마법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가 혈투를 벌여야 하는 것은 자신의 멈출 수 없는 야망이다. 문제는 그러하다 보니, 극 중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래서인지 원작을 최대한 존중한 이 영화는, 동시에 '지루하다'는 평가를 종종 받는 모양이다. 그러나 장대한 영웅 서사 속에서 우리는 한 인물이 폐허가 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아야 하는 경험은 결코 흔치 않으며, 또한 그렇기에 값지다.



영화가 원작을 훌륭히 옮겨왔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영화의 시놉시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따라서 차라리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국왕을 시해한 후 광기에 잠식되는 맥베스(마이클 패스벤더),  파멸해가는 남편 옆의 레이디 맥베스(마리옹 코티아르) 따위를 이야기하거나, 적재적소에 쓰인 배경 음악의 효과, 기존의 관념에서 탈피한 세 명의 마녀 등을 되짚어가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더불어 위엄이 더해진 영상과 로케이션을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으나, 전쟁을 카메라에 담으며 슬로모션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눈여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


커젤의 <맥베스>는, 일종의 신화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데, 그 면모는 전쟁터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물론 감독은 적나라하게 전쟁의 참상을 '전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슬로모션을 통해 시간을 손아귀에 쥔 감독은 승전의 기쁨을 삭제하고, 패전의 음울함과 다를 바 없는 죽음을 척박한 땅 위에 심어두었을 뿐이다. 뒤이어 마녀들의 예언을 더하며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에 인간은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영상으로 전달한다. 몇 가지 지점에 있어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정확히 따르지는 않았으나, 환영과 안개가 교묘히 뒤섞이기고 끝내 맥더프의 복수와 예언의 실현을 담담히 증언하는 영화 앞에서, 그러한 부분이 진정 중요한 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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