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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02. 2021

영화 <시카고 (2002)> 리뷰

별 뒤엔 늘 검은 우주가 있기 마련

뮤지컬  영화를 싫어하지 않는데도, 시카고는 오랫동안 내 위시 리스트에 존재하기만 했다. 내심 극장 재개봉을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화면과, 귀를 가득 채우는 음악이 주는 몰입감 속에서 근사한 영화를 관람하고 싶단 욕심 때문에. 하지만 내가 배급사나  극장에서 높은 위치로 근무하는 것도 아니고,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지라 우연히 시카고가 극장에서 재개봉한다 한들 보러  가긴 어려울 것 같아, 결국  왓챠에서 시카고를 감상하게 되었다.


당신은 일회용 스타이자, 삽시간에 잊혀지는 물거품이야. 그런 세계가 시카고야. 이 재판은 물론이고 세상 전부 모두 쇼 비즈니스일 뿐이야.






시카고.  일단 영화의 제목이 특이하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사건의 이름을 취하지 않고 도시의 이름을 취한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공간적  배경이 지니는 함의는 지대하다. 위에 인용한 빌리(리처드 기어)의 대사처럼, 시카고는 쇼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사건의  진위여부나 도덕성에 상관없이 소비할 수 있는 드라마가 된다면 그것에 열정적으로 도취되는 '그런 세계'다.



1920년대의  미국은 어떤 곳이었나. 당시의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로 『위대한 개츠비』가 꼽힌다는 걸 떠올린다면, 시카고의 광란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쉬울 것이다. 언론의 의무를 잃어버린 타블로이드, 합리적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히스테리적인 소비는 실재했었고, 영화에서  카메라의 렌즈에 담김으로써 재현된다. 영화에 담기진 않았으나 실제 1920년대의 시카고는 마피아로 유명한 곳이었다고도 하니,  영화 《시카고》라는 제목은 한마디로 이러한 20년대의 욕망, 그 자체를 뜻하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에 탐닉하는 시카고란 공간에서, 주인공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는 무대 위의 스타가 되길 강렬하게 열망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불륜도 서슴지 않으며, 우발적인 살인에서조차 영감을 받아 무대를 상상하기까지 한다. 록시는 구체적으로  불안정한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완전한 무대라는 상상으로 도피하며 그것을 현실로 이끌어내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에이머스(존 라일리)를 이용해 자신의 물품을 경매에 내놓고,  한때 자신의 우상이었던 벨마(캐서린 제타 존스)를 솜씨 좋게  내치기까지 한다. 자신이 반짝 스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지하자마자 임신이라는 카드를 통해 "살인은 했지만 범죄는  아니"라며 구슬프게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는 가련한 부인이 된다.



꿈을 꾼다는 건 종종 좋은 의미로 쓰이지만, 미친 세계에서 성공을 거머쥐려면 얼마나 미쳐있어야 하는 걸까?



이쯤에서  언급하고 싶은 두 인물이 있으니, 바로 47년만에 사형수가 된 카탈린과, 록시의 남편 에이머스다. 록시는 사형수가 되는 것을  면하고, 석방되어 스타가 되겠다는 목적으로 수녀학교를 중퇴했다며 자신의 과거를 꾸미고, 법정에서 아기 옷을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였을 뿐, 그의 본질은 전형적인 빅토리아형 천사와 먼 인물이다. 그러나 카탈린은 사형 판결을 듣고 돌아와 기도를 올리는 신실한  인물임에도 유죄판결을 받으며, 끝내 교수형을 통해 관객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다. 에이머스는 록시의 표현에 따르면 아둔할지언정  자신의 부인을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쓰려하며, 변호사 선임을 위해 주머니를 탈탈 털 정도로 헌신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결국 록시가  무죄 판결을 받은 그 법정에서 에이머스는 자신이 아내에게 아무것도 아닌 인물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뿐이다. 그가 부른 노래마냥  에이머스는 미스터 셀로판, 즉 존재하나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주인공이  록시인 만큼, 어찌보면 벨마는 굳이 등장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강렬하게 등장한다.  그것도 살인을 저지른 후 손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죽인 동생은 아파서 오늘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켈리  시스터즈'의 포스터를 뜯어내는 정도로 분노를 삭히고 (혹은 오늘의 무대가 '켈리 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올리는 마지막 무대라는  것을 암시하고), 총을 숨기고선 관중을 사로잡는 대담함은 시카고라는 세계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선 능력 이외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벨마가  잡혀가는 순간을 보았다는 록시의 말에, 벨마는 도도하게 응답한다. 시카고의 절반은 그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라고. 그는 이렇게  대단한 스타임에도 빌리의 말마따나 '일회용 스타'라는 문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록시가 등장하며 타블로이드는  벨마를 일곱 단어로 취급했고, 키티 백스터(루시 라우)가 등장하는 순간 그녀는 도약의 기회를 잃는다. 더이상 타블로이드도, 거액을  주고 고용한 변호사도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이때 벨마는 영리하게도 록시의 재판장에 서게 될 검사와 거래하며 석방을 거머쥔다.  벨마는 시카고 무대 위에서 정점을 찍었던 자였기에 이 세계가 쇼 비즈니스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였고,  카탈린처럼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동생과 한 주에 몇 천 달러씩을 벌던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재판 앞에서 여러 감정으로 얼룩진 록시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며, 언제 관중이 질려 무대 위에서 밀려날 지 모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벨마의 모습은 유감스럽지만 록시의 미래이기도 한지라, 아무리 영화의 끝이 유쾌하게 장식되었을지라도 둘 사이가  어떻게 전개될진 아무도 모른다. 




영화 《시카고》는 거대한 허상과 욕망을 화려하게 비웃는다.  그렇기에 다양한 요소를 결합해 감각적으로 불안정한 떨림을  구현해낸다. 영화와 뮤지컬의 만남과 변주를 통해 영화 내에 전제된 현실과 상상을 오가며, 등장 인물들은 카탈린과 에이머스가 아닌  이상 두 가지 자아를 연속적으로 생산한다. 더불어 이 영화가 매력적인 지점은, 이 영화의 속성 중 하나가 바로 그 거대한 허상의  재현이기도 하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여전히 판타지를 소비하며 어제보다 강렬한 엔터테인먼트를 원한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한 후,  나는 내게 묻는다. 어쩌면 나 역시 시카고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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