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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16. 2021

영화 <디 아워스 (2002)> 리뷰

나와 당신을 더이상 망칠 수 없는 시간


일전  영문학을 전공한 한 영국인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영문학을 전공할 초반 나를 사로잡았던 작가는 다름 아닌 에밀리 브론테였는데,  그는 버지니아 울프라고 말했다. 버지니아 울프. 나는 『자기만의 방』, 『등대로』, 『올란도』 등을 읽었으나 그를 특별히 - 혹은  열렬히, '작가로서' 사랑하진 않았다. 그렇다 해서 놀라운 순간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스코틀랜드 해변이  배경인 『등대로』를 읽으며 어쩐지 콘월 지방, 특히 세인트 아이브스의 향기를 떠올렸던 적이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스코틀랜드  해변에 다녀온 경험은 없으나 세인트 아이브스에서 활동했던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내가 21세기에 단 한 번 다녀온  장소를 글 속에서 생생히 되살리는 작가가 180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니. 한 풍경을 매개로 시대를 넘는 교감을 해낸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던 그 오싹한 감상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다만,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쓴 글보다는 작가 개인의 삶이  더욱 흥미롭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삶에 매료될 것만 같다고 느꼈다. 




왓챠  플레이 구독이 끝나가고 있단 말에 예전부터 추천받았던 영화 《디 아워스》를 틀었다. 자세한 줄거리는 몰랐다. 아마 추천받았을  땐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었겠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천천히 지워져 내린 탓이다. 잘은 모르지만 버지니아  울프와 관련된 영화라는 정도만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고, 세 명의 근사한 배우들이 주요 출연진이라 하니 굳이 물릴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이 영화를 틀었고,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비 내리는 주말에 볼 수 있었던 건 내게 더없는 행운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핵심으로 삼아 세 여성의 하루를 기록한다. 또한 이는 버지니아 울프가 집필한 소설   『댈러웨이 부인』 그 자체의 한 모티프이기도 하다. 그러하니 이 영화엔 네 명의 댈러웨이 부인이 등장하는 셈이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는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브라운,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클라리사 본,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으나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책 『댈러웨이 부인』 까지. 그러나 영화의 제목은  다르다.  왜일까.




나는   영화, 그리고 원작 소설의 제목인 디 아워스(The Hours)가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소설   세월(The Years)이란 제목의 변용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하루를 기록한 내용이기에 '하루'라고 명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작가는 '디 아워스'라는 단어를 선택한 점에서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삶을 쪼개 한 해로 변환하고, 한 해를 쪼개   하루로, 하루를 쪼개 시간으로 만들어 그 시간에 대표성을 가하는 것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단 '시간'으로 범위를 좁히기 전   무대의 배경이 되는 여성들의 하루를 조망해 보자. 이 하루는 평범하다고 부를 수도 있지만, 특별하다고도 할 수 있는 하루다.   하루가 쌓여 일생이 된다면, 하루 역시 결국 일생 분의 일이라는 걸 말해주듯이. 영화 속 세 여성 중 한 명은 죽음을 결심하고   실행하며, 한 명은 죽음을 결심하나 단념하고, 한 명은 죽음을 목격하고 빈 시간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자, 하루의  변화는  언제 일어나는가? 하루를 쪼갠 매 시간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어쩌면, 거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매 시간은 그러므로 일생의 축약본이라고.



If  anybody could have saved me it would have been you. Everything has gone  from me but the certainty of your goodness. I can't go on spoiling your  life any longer. I don't think two people could have been happier than  we have been.



영화는   세 여성이 시시각각 마주하는 절망과 공허를 담는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시절 남편은 레너드 울프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그녀를  위한 많은 방편을 연구하였으나 그것은 버지니아에게 속박과 고함으로 비칠 뿐이었다. 몇십 년이 흐른 후 가정을 꾸린 로라   브라운은 그를 끔찍하게 아끼는 남편과 살지만 그는 '실은 외톨이였던' 아가씨를 잊지 못해 만나게 되었다며, 로라에게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발언을 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로라는 여전히  '전쟁통에서 돌아와 우리 같은 아내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남편'에게 스스로가 미달되어있다고 느끼는 듯도 보인다. 그는 사랑받는 아내로 비치지만 혈색 없는 미소로 남편의  출근을  배웅하고, 생일인 그를 위해 아기자기하고 예쁜 파란 케이크를 구우려 하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레시피조차 망치는 절망  속에서 삶을  이어가며, 빨리 자신의 곁에 와달라는 남편의 요구에 차마 싫거나 힘들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가까운 이의 부재가 곧  일어날 수도  있다는 소식은 로라 브라운의 일상을 더욱 크게 흔들고 그는 우울 속에서 간신히 호흡하는 상태로 치닫는다. 그렇기에  나는 이  영화가 시대가 지나도 이해받지 못하는 여성의 우울을 미시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집중했다고 보며, 그 성공은 마지막  여성인 클라리사  본에서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클라리사   본의 서사는 『댈러웨이 부인』의 내용을 변용하여 적용한 듯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울프의 삶을 반전시킨 듯도 보인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클라리사는 10대 시절, 한 철 동안 사랑했던 전 연인 리처드에게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며 사실상   '남남'이어야 할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 리처드의 '엄마' 혹은 '아내'처럼 보이는 독특한 관계를 이어 나간다. 이 관계에서   비롯된 갑갑함은 클라리사가 돌연 눈물 흘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클라리사와 함께 사는 연인 샐리나 줄리아는 클라리사의   망연함을 완연히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러니 이런 것이다. 여성들의 절망은 어떻게 이해받고 있는가? 버지니아의 시대엔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이 있었으나 이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고,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아끼기 위해 죽음을  택해야만  했다. 로라 브라운은 버지니아처럼 공식적인 정신병력이 없었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가 있었으나 (그리고 로라 자신이  가슴 한  편으로 사랑한 키티가 있었으나) 그녀의 절망에 공감해주진 못했으므로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는 방편으로 도피를 선택했다.  작가는  클라리사를 통해 마지막으로 묻는다. 정신병력이 없고, 동성 연인과도 사랑을 이룰 수 있으며, 오로지 가정에서의 천사로만  찬양받을  필요가 없는 위치에 여성이 이른다면 괜찮지 않을까? 클라리사의 삶은 그러나 여전히 돌봄 노동에 일부 매몰되어 있으며  리처드의  죽음으로 종결된다. 세상은 왜 여성의 절망에 공감하지 못하는가? 같은 여성이라 하여도 어째서 샐리와 줄리아는 클라리사와  로라의  만남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외부인이 되는가? 그것은 여성들의 절망과 우울이 관계 속에서 "차마 내칠 수  없다"는  이유로 피어나기 때문이었다. 이 관계 속에 발을 들이지 못한 자는 성별이 같다 해도 외부인이 된다. 그물망처럼 치밀한  관계 속에서  빚어진 억압은 백 년이란 시대가 지난 현대에서조차 여전히, 매 시간 여성들의 삶에서 유효하다.






이외에도   《디 아워스》는 꼭꼭 씹듯 바라보고 싶은 점이 많은 영화다. 시각적으로 훌륭한 시퀀스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서사를   잇는 교차 편집 기법, 창문을 여닫는 작은 행위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 화면 뒤의 의미 등이 언뜻 보기에도 깊이가 남달라 모두   낱낱이 파헤치고 싶단 생각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더불어 로라 브라운의 파란 케이크처럼 상징적인 색상을 훌륭하게 사용하였고,  시대가  다른 것을 살리기 위해 각 여성의 시대마다 화면 내의 색상과 분위기를 다르게 부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음악의 사용 역시   감각적이며 뛰어나다. 버지니아의 내면을 Gm화음과 반음계적 화성으로 나타내거나, 세 여성의 절망을 나타내기 위해 3화음 형태의   반복적인 코드 진행을 활용한(황진희, 이승언. 2014.)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빠진다면, 그 완성본은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디  아워스보다 매력이 현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디 아워스》를 통해 어느 비 오는 날 무엇보다 묵직하지만, 단연코 섬세한 우울을 끌어안아본다. 내일 아침, 나도 꽃다발을 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상상하기도 하면서.







★★★★☆


참고문헌

황진희, 이승연. 2014.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에서의 인물 심리와 화음 진행의 상관관계.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14(11),678-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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