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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an 30. 2019

영화 <리틀 포레스트 (2018)> 리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추천을 받아 늦게나마 펼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다소 실망스럽다. 대사는 평면적이며 플롯은 안일하다. 농촌의 흔흔한 정이나, 인간관계의 사소한 웃음을 담아내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찰나의 환상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혜원(김태리)의 설정이 퍽 현실적이고 수많은 2, 30대 청년의 현실을 반영하기에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스크린에 수놓아지는 그녀의 선택과 삶은 오히려 비현실성이 강조되고야 만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진부하더라도 이맘때 내게 필요했고 내가 듣고 싶었던 위로로 가득했기 때문일 듯 하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성장에는 어떠한 순환, 혹은 멈춤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우리는 혜원이 겨울에 낙향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한 해의 마지막인지 한 해의 시작인지는 모른다. 12월 혹은 1월, 어쩌면 2월일 수도 있는 그 순간에 ‘배고파서’ 내려왔다는 혜원이 먹는 음식은 봄동 된장국이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그렇게 봄과 겨울을 한 컷에 담아내며 이 영화의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알린다.


모든 것엔 적절한 때가 있다는 것, 자연적인 순환은 필수 불가결한 무엇이라는 것.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에 도시는 알맞은 장소가 아니다. 인스턴트 음식으로는 달랠 수 없었던 허기나 도시락을 싸도 완벽하게 전해질 수 없었던 진심으로 갈등을 겪는 곳이므로. 혜원은 그렇게, 오래 보관할 수 있다지만 결국 말라비틀어진 과일을 담아 두었던 냉장고를 벗어난다. 고향에서 재회한 친구가 과수원을 하는 제하(류준열)와 -편의점을 했던 자신과 달리- 농협에서 일하는 친구 은숙(진기주)이라는 점은 따라서 유의미하다. 한 사람은 돌아왔고 한 사람은 떠나지 못했다. 혜원은 여러모로 두 사람 사이의 경계에 선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가 시골에서 여러 가지 '맛'을 이해할 때, 두 친구는 꼭 필요한 말벗이 된다. 그녀의 떡에선 재현되지 못했던 엄마 떡 특유의 단맛, 친구와 나누는 (분노의!) 떡볶이, 어릴 적엔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의 맛’ 막걸리.



일본의 <리틀 포레스트>와 한국의 <리틀 포레스트>를 논할 때 가장 크게 다른 점을 꼽자면, 음식을 다루는 태도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리틀 포레스트>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음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이 점은 인물의 성장과 결합할 때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음식이  각 인물과 인연을 맺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인물을 알게 되고, 그들의 성장을 응원하게 된다. 떠나는 것을 바랐으나 고향에서 제하와의 로맨스를 꿈꾸고, 아픈 말을 곧잘 한다지만 결국 상사 아래서 고통받는 은숙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이며, 완전히 마음을 접고 고향에 남기로 결정한 재하는 또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이고, 서울에서의 생활과 엄마와의 추억 그 어드메에서 방황하는 혜원은 어떻게 자라날 것인가?


사실 영화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답을 주지 않는다. 침묵한다는 표현은 공정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결말이 미적지근하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는 없다. 태풍조차 묵묵히 초보 농사꾼의 수업료로 삼는 제하의 모습은 때로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혜원을 이 땅에 “심으려 했다”는 엄마(문소리)의 말은 퍽 작위적이라고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겨우내의 곶감을 준비하는 혜원의 모습과 “겨울이 와야 진짜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이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 나는 도무지 <리틀 포레스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이런 영화만이 관객에게 선물할 수 있을 따뜻한 감성을 거부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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