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Feb 12. 2019

영화<메리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2017)>리뷰

"My choices made me who I am. And……"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붙은 한국 제목과 달리, 원제는 단순히 ‘메리 셸리’인 이 영화는 시종일관 차분한 영상미를 자랑한다. 영국 넷플릭스에서 처음 이 영화를 발견한 순간 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모습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재현한 화면에 마음을 빼앗겼다. 매 순간 메리 셸리(엘 패닝)가 걷는 거리 속 바람을 함께 느끼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될 만큼, 각 장면은 굉장히 섬세하고 빼어난 감성을 자랑한다. 어쩌면 이것은 십 대 소녀의 성장과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가 등장하는 영화가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예의, 혹은 미덕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화는 제목이 일러주듯이, 당연히 메리 셸리의 삶을 추적하나, 재미있게도 그녀가 아직 메리 셸리이기 이전의 시절을 그려낸다. 사고사로 요절한 남편과는 달리 53살이 될 때까지 살았던 그녀의 삶 중 2년이라는 짧은 시기를 120분에 압축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하게 되는 순간으로 영화를 시작하여 작가의 고뇌를 풀어내는 것도 가능했을 지 모르나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충실하게 그녀의 삶을 배열하는 데에 집중했다. 왜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영화를 끝까지 본 이후,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이미 우리가 아는 '완성된 작가'로서의, 영문학에 지워질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메리 셸리가 아니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열 여섯 소녀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며 그의 제자였던 퍼시 셸리와 사랑의 도피를 하고, 그 사랑에 아파하고, 또 어떤 죽음을 마주하며 열 여덟의 메리 고드윈이 되는 순간들. 서정주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썼듯, 감독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메리 셸리가 어떤 고난을 경험했는지에 집중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련의 경험이 우연이란 이름 아래서 한데 중첩되고 알알이 엮여 한 권의 책이 되는 모습을 영화의 끝자락에 놓인 덕분에 이야기는 통일성을 손에 쥐는 데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사실 <메리 셸리>는 깔끔하게 재단되었다던가, 매끄럽게 만들어진 영화라 말하기엔 단점이 적지 않은 영화다. 초반부의 우아한 리듬감은 후반부에서 찾기 어려우며, 아무리 실화에 기반했다 하더라도 적절한 각색을 통해 제 자리를 줄 수 있었을 법한 인물들마저 너무나 손쉽게, 일방적으로 소비된다. 더군다나 꿈을 통한 영감의 획득은 클리셰인 것을 차치하더라도, 전설적인 작품을 잉태하는 작가의 고민을 너무 축소시킨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뿐더러, 출판사와 마찰을 빚는 장면은 조금 더 신중히 다룰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쉽기까지 하다. 그러나 <메리 셸리>는 그녀의 감정을 한결같이 진솔하게 빚어낸다는 점에서 빛나는 영화다. 열 대여섯 살이 고작 중고등학생에 지나지 않는 나이라는 것을 고려해 보자면 더더욱.  비록 수많은 갈등이 있었으나 후회가 없다고 자신의 입장을 깔끔히 정리하고, 사랑을 수복하는 마지막 시퀀스는 프랑켄슈타인의 2판 인쇄의 이름에서 정점에 달한다. 스캔들로 인해 사교계에서 침묵해야 했고, 여성 작가이기에 익명으로 책을 내야 했던 메리 고드윈이 메리 셸리로 거듭나는 숏이 퍽 기묘한 감동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본 영화 중 여성 작가 포지션에 놓인 캐릭터가 많았다. 이를테면 <콜레트> 속의 콜레트, <크림슨 피크>의 이디스 쿠싱 등이 그 예다 (특히 이디스 쿠싱은 영화 내에서 제인 오스틴 보다는 메리 셸리가 낫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각 캐릭터는 세상을 모두 다르게 바라보고, 모두 저마다 다르되, 다양하게 합당한 결과를 끌어안는다. 옳고 그름, 부당함과 공정함을 떠나 모든 영화 속 선택이 가치로웠다고 나는 생각하며, 그것을 바라보는 동안 즐거웠다. 그렇기에 언젠가 내가 만날, 또다른 여성 작가의 이야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서프러제트 (2015)>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