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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Feb 15. 2019

영화 <올 이즈 트루 (2018)> 리뷰

셰익스피어의 황혼기는 어떻게 빛났을까

* 아직 한국에 정식 개봉한 작품이 아닌 만큼 최대한 스포일러를 배제하려 노력하였습니다. 트레일러에서도 확인할 수 있거나, 역사적으로 동일한 지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다소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도 불편하시다면 읽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살아생전에도 영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책임졌지만, 사후에도 혁혁한 공을 세우느라 바쁜 인물이다. 그의 극은 여전히 무대에 오르며 (심지어 전 세계의 무대를 점령하였고) <셰익스피어 인 러브 (1998)>와 같이, 셰익스피어라는 위인 자체를 소재로 한 영화마저 그 수가 적지 않다. 영국의 영화, 드라마라면 까메오로 셰익스피어를 등장시키는 경우 역시 흔하다. 예컨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13)>에선 말로우와 셰익스피어가 동일인이라는 가설을 채택하여 뱀파이어인 그를 등장시켰고, 닥터후 시즌 3에선 아예 셰익스피어가 극의 중심에 나서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셰익스피어는 21세기인 지금에도 영국의 자랑거리이자 문화 그 자체의 핵심 골자라는 사실이다. 


기실, 영국 배우라면 거의 다 그렇겠지만, 케네스 브래너는 셰익스피어와 특히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겠다. 유명 배우이자 감독이기까지 한 만능 예술인 그는 이미 <햄릿 (1996)>을 비롯하여, 영화화된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굵직한 역할을 맡고 연출한 바 있다. 그런 그가 감독이자 주연 배우로 나선 이번 영화, <올 이즈 트루>는 셰익스피어(케네스 브래너)의 은퇴 이후를 다룬다. 런던에서 화려한 성공을 손에 거머쥔 셰익스피어는 고향으로 금의환향했을까? 안타깝게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글로브 극장이 불타 사라진 이후 고향으로 돌아간 셰익스피어를 맞이하는 두 딸 수잔나(리디아 윌슨)와 쥬디스(캐서린 와일더), 아내 앤(주디 덴치)의 태도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셰익스피어가 런던으로 떠나 무려 20여 년간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가족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으나, 남편인 셰익스피어에게 '당신은 손님이나 다름없다’고 일갈하는 아내 앞에서 그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촛불만을 들고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그는 어디에 마음을 두고 일상을 일궈야 할까. 더군다나 그가 아끼던 아들 햄닛(샘 엘리스)마저 이미 오래전에 죽었는데 말이다.



<올 이즈 트루>는 픽션과 팩트를 적절하게 분배하여 플롯을 구성하였다. 실제 셰익스피어와 인연을 맺었던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을 등장시킨다거나, 벤 존슨과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을 배치하여 영국인이나 셰익스피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 군데군데 즐길 거리를 속속들이 삽입한 것이 그렇다. 그밖에도 다양한 작품들을 두루 살피고 고민한 흔적이 각본에 묻어 나온다. 간단히는 오필리어의 죽음과 병렬시킨 씬이 있다는 점, 쥬디스의 대사 중 상당수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이렇게 공들이고 신경을 쓴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아마도 100여분 동안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담으려 했다는 것이지 않을까. 하고픈 말이 많았던 작품이기에 오히려 각본은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의 황혼기를 품을 만큼 근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본작의 제목이자 셰익스피어가 실제 썼던 극본의 제목이기도 한 ‘All is true’의 깊이는 대사에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등장하여 그 깊이가 떨어지고 작품 속 미스터리와 반전은 싱겁게 공개되거나 해결된다. 더불어 로우 앵글을 통한 메시지 전달 역시 과도한 반복, 변주 속에서 힘을 잃는다. 


다만 이러한 아쉬움을 보완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영상미다.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을 다루기 때문인지 영화는 종종 연극적인 멋을 충실히 살려냈다. 또한 사실적인 빛의 활용 역시 인상적이다. 인공적이고 강렬한 조명 대신 촛불과 어둠, 창문에 고이는 햇살과 벽난로를 활용한 연출은 영상 자체의 아름다움을 고양시킬 뿐 아니라 인물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어디 그뿐인가? <올 이즈 트루>는 영화 속의 모든 화면이, 그 구도가 이다지도 섬세히 짜일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자랑하는 듯했다. 롱숏으로 잡아내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의 아름다움은 감탄할 수밖에 없으며, 시끌벅적하면서도 활기가 넘치는 중세 영국의 거리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셰익스피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관람을 추천하고픈 영화다. 이 영화야 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가 아닐련지.


뱀발.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문구, '셰익스피어의 사망일은 생일과 같다'는 말은 퍽 낭만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해야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문서에 남은 '유아 세례를 받은 날'과 당대의 관습을 통하여 생일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전부다. 어찌 되었든 셰익스피어의 정확한 생일을 기록한 문서는 남아있지 않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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